[마이너리티의 소리] 있으나마나한 경로당 보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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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인정'이라고도 불리는 크고 작은 경로당이 방방곡곡에 4만3천여개소가 있다. 나라가 노인을 위해 마련해준 노인 여가복지시설 중 가장 대표적인 경로당은 노인복지법에서 '지역 노인들이 자율적으로 친목도모.취미활동.공동작업장 운영 및 각종 정보교환과 기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라 정의하고 있다.

법대로 경로당의 모든 프로그램이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운영비,즉 전기.수도요금을 비롯한 제반 운영비용 또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용자 부담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 우리 어르신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좋은 편이 못된다.노인들은 당신들께서 윗분들을 극진히 모셨듯이 당신들도 자식들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 믿고 열심히 일해 얻은 모든 것을 자식이 교육받을 때는 물론 가정을 이룬 후에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힘자라는 한 '투자'했다. 구태여 노후설계를 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나 할까□ 돈 없으면 꼼짝 못하는 세상이 왔는데 자식들 또한 높은 주거비용과 아이들 교육비용 등으로 여유가 없어 노인들에게 용채를 넉넉히 드리는 자식들이 흔치 않은 게 오늘의 현실이다.

경로당마다 매월 적게는 1천원에서 많게는 3천원 정도의 회비를 받아 운영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운영 보조금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이만큼 끌어올려 놓은 저력의 세대들 답게 폐품을 분리수거해 팔기도 하고, 텃밭을 일궈 채소를 자급하는 등 이런저런 '자구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뵐 때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우리 노인들은 최소한 우리 나라 경제력과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경로당은 요즘 각 지방단체가 설립.운영하고 있는 종합노인복지관만큼 시설이 좋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곳처럼 20여 가지 이상의 프로그램이 없어도 좋다. 아무런 부담 없이, 회비도 물론 필요 없이 그저 모여서 담소할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

대한노인회는 정부가 시급히 경로당 실태조사를 해 노후시설의 개.보수도 해주고 운영비도 현실화 해줄 것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간혹 노인복지에 관심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도와주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이들은 극소수일 뿐 대부분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경로당 운영보조금마저 천차만별이다. 노인들은 자식들과의 상대적 빈곤감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 지역적인 격차에서 오는 또 하나의 상대적 빈곤감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가장 기본적인 노인복지시설인 경로당의 현주소가 이러한데 노인복지정책을 다루는 분과 연구하는 분, 그리고 더 높은 분들은 여기저기서 '노인 복지 이래서는 안된다'고 열변만을 토할 뿐 정작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어 노인을 모시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만 하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펴고 계신 전국의 4만여 경로당 회장님께 경의를 표하며 올해는 전국의 모든 경로당이 난방비 걱정을 덜 수 있게 정부가 배려해 줬으면 하는 꿈같은 소망을 가져본다.올 겨울은 유난히 길 것이라는데 게다가 노인의 겨울은 젊은이들보다 달포쯤은 더 길어지니….

김정호 <대한노인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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