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티븐 호킹과 케플러의 우주 범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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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02면

400년 전인 1610년 4월 19일,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갈릴레이에게 서신을 보낸다. “거센 바람을 버틸 배나 돛이 있다면 텅 빈 우주를 겁 없이 항해할 자가 있다.” 우주에서 혜성의 꼬리가 태양풍에 휘는 현상을 본 뒤 쓴 글이다. 우주에도 바람이 있다니. 그래서 ‘거울 돛으로 태양풍을 받아 움직이는 우주 범선’이라는 상상도가 그려졌다.

그 상상의 현대판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으로 이어졌다. 14만4000명을 우주 범선에 실어 새로운 지구 ‘JW103603’으로 1000년간 항해한다는 내용이다. 케플러-베르나르를 연결하는 우주 범선이 그렇다면 상상과 소설만의 주제인가. ‘천문학은 우주를 항해할 용기 있는 자를 위한 것’이라는 케플러의 명제가 여전히 꿈의 소재일 뿐인가. 아니다.

상상은 400년 동안 힘을 키웠다. 300년 뒤 1873년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은 ‘태양 빛의 광자에 밀고 누르는 힘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광자가 우주 범선의 돛을 밀 수 있을 것이다. 또 100년이 흘렀다. 1974년 화성으로 발사된 미국 우주선 ‘마리너-10’엔 더듬이가 달렸다. 태양 방사선의 압력을 고도 조종에 활용하는 비밀 장치였다. 태양 돛 또는 우주 돛의 출발이었다. 10여 년 뒤 우주 범선-우주 돛은 과학 경쟁의 문을 열었다.

인도는 92년 통신위성 INSAT-2A에 태양 돛을 달아 궤도에 올렸다. 93년 러시아는 ‘즈미야-2’라는 20m 크기의 우주 회전 거울을 실험했는데 태양 돛을 달고 있어 우주 범선의 하나로 간주됐다. 우주 범선의 아이디어는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03년 인도는 INSAT-3A 통신위성에 또 우주 돛을 달았다. 2004년 일본은 준궤도에 장비를 올리는 데 태양 돛을 사용했다. 2005년 1월 미국은 실종되긴 했지만 러시아 발사체로 우주 돛을 단 ‘코스모스-1’을 쐈다. 2008년 코스모스-2 발사를 말했지만 소식이 없다. 그래서 현재 승자는 5월 18일 우주 범선 이카루스를 발사하는 일본이다.

범선은 출발 100일 뒤 시속 1만6000㎞가 되고 더 가속돼 로켓이 7년 걸리는 명왕성을 5년에 간다. 400년이 더 흐르면 행성 간 이동이 비행기로 일본 가는 것쯤 될지 모른다. 영화 아바타처럼 외계 행성을 개척하고 외계인을 만날 수도 있다.

그 우주적 경쟁에서 한국은 어떨까. 우리는 지금 달에 통신위성을 착륙시킬 엔진을 준비한다. 2.8㎏에 21㎝ 앙증맞은 크기. 우주 범선 개발 시대에 아직 초보자다. ‘우주인을 찾지 말라. 그들이 지구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스티븐 호킹의 말이 우주 개발을 주저하게 해선 안 된다. 베르나르는 삼성에 ‘우주 범선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삼성과 한국은 준비하는가. 우주와 미래는 상상하는 자들의 것이다. 우리는 마구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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