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경솔한 검찰 간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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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날옛적 한 마을에 수사권.기소편의주의.기소독점주의라는 세 가지 권능을 소유한 '삼장검사(三藏檢事)' 가 살고 있었다.

경(經).율(律).논(論)에 능한 삼장법사의 사촌쯤 되는 그는 손오공(公).저팔권(權).사오력(力)이라는 걸출한 부하들을 거느린 데다 마을 실세와 같은 고향 출신이어서 대단한 힘을 갖게 됐다. 권력이 커진 그는 자신에게 권능을 부여한 부처님까지 깔보기 시작했다.

*** 후배에게 고개 들 수 있나

권력 남용을 우려한 부처님은 삼장검사에게 세 가지 경고문을 내려보냈다. 1)작은 놈보다 큰 놈을 잡을 것. 2)공평하게 주먹을 휘두를 것. 3)권능을 쓸 때 그 망실에 주의할 것 등이었다. 하지만 삼장검사는 이를 무시하고 실세와 자신의 입맛에 따라 권능을 썼다.

부처님은 참다못해 "잠시 권능을 거둬들이겠다" 고 그에게 통보했다. 삼장은 볼멘소리로 "일부 마을 유지와 눈이 비뚤어진 사관이 자신을 모함했다" 고 주장했지만 이를 믿는 주민은 많지 않았다.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법조계의 지인이 술좌석에서 들려준 패러독스(逆說)한 유머다. '이용호 게이트' 에 발목이 잡혀 특검제가 도입되는 망신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검찰의 현실을 썰렁하게 풍자한 것이다.

불행히도 상당수 국민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부 검찰 간부를 유머 속의 삼장검사처럼 여기고 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긴급체포한 범죄 혐의자를 무슨 까닭인지 풀어주었다. 또 그 범죄자가 경영하는 회사에 검찰 간부들의 친인척이 근무하고 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의 인사와 어울린 흔적까지 나오는 판이다.

현직 고검장 등이 조사를 받고 있는 특별감찰본부 주변에서는 "검찰이 건국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감찰본부가 설치된 서울남부지청의 한 간부는 "후배들에게 고개를 못들겠다. 차라리 옷을 벗는 게 낫겠다" 고 했다.

검찰이 이렇게까지 몰린 것은 이번 정권 들어 부상한 일부 검찰 고위 엘리트들이 그 막강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볍게 행동한 탓이 그 무엇보다 크다.

검찰총장과 그 부인이 부적절하게 행동해 옷 로비 사건을 몰고 왔고, 급기야 특검제까지 도입됐다. 또 대검 공안부장이라는 사람이 폭탄주 몇 잔에 공기업의 파업을 유도한 듯한 발언을 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 간부들이 한 변호사에게 향응을 받아 줄줄이 옷을 벗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도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최근 몇년새 검찰의 권력은 막강해졌다. 유신 시절이나 5, 6공(共) 때처럼 군이나 정보기관이 위세를 부리지 않고, 청와대의 사정.민정 활동도 왕성하지 않다. 정부 내에서 견제받지 않고 있는 셈이다. "권력의 핵심은 3청(검찰청.국세청.경찰청)이요, 그중 으뜸은 검찰" 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검찰이 마음대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우리 사회는 성숙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각종 비리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풍토다.

언론.시민단체의 감시는 날카로워졌다. 상관이 부당한 지시를 하면 일선 검사가 노골적으로 반발할 정도로 내부의 분위기가 변했다. 학계에서는 검찰의 기소 독점.편의주의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 날카로운 시민·언론 감시

세상이 변했는데도 검찰 엘리트의 사고방식은 그만큼 바뀌지 않았다. 옷 로비.파업유도 의혹과 이용호 게이트 등에서 보듯 그 큰 힘에 맞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 위기를 불렀다. 중국에서는 1915년 일제에 굴복해 조약에 승인한 5월 9일을 그냥 국치일 대신 '국치(國恥)기념일' 로 부른다.

굴욕을 당한 날을 국민에게 명심시켜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함이다. 검찰도 '검치일(檢恥日)' 이라고 자조만 할 게 아니라 이번 사건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검찰 고위 엘리트들은 그 막강한 힘과 지위에 걸맞게 행동하고 책임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를 갖춰야 한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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