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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광균 '장곡천장에 오는 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찻집 미모사 지붕 위에

호텔의 풍속계 위에

기울어진 포스트 위에

눈이 내린다

물결치는 지붕지붕의 한끝에 들리던

먼 소음의 호수 잠들은 뒤

물기 낀 기적만 이따금 들려오고

그 위에

낡은 필름 같은 눈이 내린다

이 길을 자꼬 가면 옛날로나 돌아갈 듯이

등불이 정다웁다

내리는 눈발이 속삭인다

옛날로 가자, 옛날로 가자

- 김광균(1913~1994) '장곡천장에 오는 눈'

내가 태어난 해 1936년, 김광균 선생은 '시인부락' 동인이었다. 『와사등』(瓦斯燈)은 첫번째 읽은 시집이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라는 색지(色紙)가 나를 놀라게 했다. 장만영 선생이 경영하던 미모사 찻집은 못가봤다. 영천(서대문)까지 가는 전차 속에서 '34문학' 을 읽을 때 장곡천장에 내리던 눈발….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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