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게 국정감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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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과거 어느 때보다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국회 국정감사가 29일 끝났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정부 질문 등을 통해 검찰.국가정보원.국세청.금융감독원.경찰 등 국가 권력기관의 수뇌부나 간부가 '이용호 게이트' 비리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이러고도 정부가 제대로 굴러갈 것인가 하는 의아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진실을 밝히는 실체가 없이 권력 핵심에 있는 인물들까지 갖가지 의혹의 중심과 주변을 오르내리면서 국민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국감은 끝났지만 우리들의 손에 잡힌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국감인가 하는 허탈감마저 갖게 한다.

더구나 모든 사람의 관심을 모았던 '언론사태 규명' 을 위한 국감도 요란한 빈 수레가 됐다. 어렵사리 합의를 이뤄냈던 관련 신문사 사주들의 증언청취도 무산됐다.

이번 국감에 대한 여야의 정치적 손익계산조차 무의미한 일이 됐다.

여당은 "야당이 근거없는 정치공세로 '부당' 하고 '부정확' 한 각종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국민에게 '불만' 과 '불안' 을 안겨준 4불 국감" 이라고 성토하는 반면 야당은 "현 정권의 총체적 비리를 파헤친 성공적 국감" 이라고 공박하는 현실이 사태를 대충 짐작케 한다.

국감은 상임위별로 국정 전반에 관한 소관부처의 업무를 감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지난 업무 평가에 기초해 국가정책의 수적 표현인 새해 예산을 제대로 심사 수립하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용호 국감' '언론국감' 이 돼버린 올해의 국감은 한계를 지닌다.

'4불론' 이나 외치는 집권 민주당의 자세는 결코 온당한 것은 아니다. 제기된 일련의 의혹들이 혹시나 다음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국면 호도에 급급했다.

사실 '이용호 게이트' 가 아니라도 여당으로선 변명할 여지가 별로 없을 것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강력히 대두되는 국정쇄신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채 감사에 임함으로써 당의 지휘력이 분산돼 대국민 설득력을 잃었다.

여야는 '이용호 게이트' 또는 '언론국감' 을 둘러싸고 치고 빠지는 폭로전을 거듭했지만 진상규명의 문턱을 넘기는커녕 의혹만 잔뜩 부풀려 놓은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칫 덧나기 쉬운 지역감정을 또 들쑤셔 놓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의 국회가 예산안 심의를 뒷전으로 한 채 다시 이용호를 둘러싼 정치공방으로 흐를 소지가 크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의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로 인해 진지한 예산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마당인데 여야가 정략만을 앞세운다면 사태는 정말 심각해진다.

미국의 테러 사태 이후 세계경제가 더욱 침체국면으로 치닫지 않을까 걱정되는 현재 상황에서 국회는 좀더 진지한 자세로 경제위기 타개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각종 의혹은 철저히 밝히되 제대로 된 예산안 심의를 통해 국민생활이 움츠러들지 않도록 정책개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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