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결혼 내년에 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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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코리안 특급' 박찬호(28.LA 다저스)는 침착하고 평온했다. 올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 그를 둘러싸고 터져 나온 허리 부상과 다저스로부터 방출, 코칭스태프와의 불화 등 여러 가지 설(說)에 상기되거나 동요할 만했지만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올해를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그는 다저스 잔류 여부와 몸값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스토브리그 최고의 뉴스 메이커가 될 전망이다.

"올해가 어쩌면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한 해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을 얻었고 또 한걸음 나아갔다고 느낍니다. "

그래서 그런지 미국 LA 베벌리힐스 서밋코트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난 박찬호의 답변은 단호했고 거침이 없었다.

- 현재 성적에 만족하나요.

"13승인데…. 행운이 따라준 경기도 있지만 불운으로 얻지 못한 승리도 있고…. 초반에는 페이스가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지난 5월 5일 시즌 일곱번째 등판에서 허리를 삐끗하고 난 뒤 러닝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 다음에 좀 나은 것 같아 딱 한번인가 달렸는데 그때 허리 전체가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러닝은 못하고 자전거 타기로만 하체운동을 하고 있어요. 하체운동을 충실히 못하고 후반에 오니까 아무래도 힘이 부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오기는 살아 있어요. 이 악물고 던집니다(웃음). "

- 허리 상태는 어떤가요.

"아프다기보다는 '뻐근하다' 는 느낌이에요. 날씨가 궂거나 추우면 더 안좋고, 맑고 따뜻하면 괜찮아요. 이제부터는 한꺼번에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양을 늘려가며 러닝을 할 생각입니다. "

- 지난 18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 때 구원 등판을 놓고 말이 많은데요.

"(테러 사태로)휴식기간이 길어 컨디션을 점검하려고 1이닝 정도를 부담없이 던지고 싶었어요. 그러나 당시 상황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1 - 1 동점에서 7회초였다).

아무래도 힘이 많이 들어가니까 밸런스가 흐트러지고 볼넷이 나오고…. 그러면서 더 악화됐지요. 게임 전에 내가 (짐 트레이시 감독과 짐 콜번 코치에게)던지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꼭 나가게 해달라' 고 요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나는 속으로 부담없이 컨디션만 테스트해보려 했어요. 그날 4회부터 준비를 했어요.

5, 6회까지 아무런 말이 없길래 안 올라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7회에 올라가라더군요. 마운드로 뛰어가는데 느낌부터 달랐어요. 어쨌든 잊고 싶은 기억이에요. 에이전트 보라스도 고객인 그레그 매덕스와 케빈 브라운처럼 대단한 실력을 지닌 선수들이 구원으로 등판해서는 모두 실패했다고 그러더군요. "

-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팀을 옮길 것인가가 첫번째, 몸값이 2백억원 가량되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인가가 두번째, 우리 나이로 내년이면 서른 살인데 결혼은 언제 할 것인가가 세번째인데요.

"(웃으며)모두 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군요. (잠시 생각하다가)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죠. 1994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영어라고는 '생큐' 밖에 몰랐어요.

당시 처음으로 배운 영어가 '아이 러브 더 다저스' 예요. 당시 토미 라소다 감독이 만날 적마다 큰 소리로 이 말을 외치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8년(메이저리그는 6년) 동안 다저스에만 있었는데요. 나는 분명히 다저스를 사랑합니다. "

- 떠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남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가 알겠습니까. 남고 싶다고 해도 팀에서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으면 떠나야 하는 게 이치겠죠. "

- 연봉은 얼마나 요구할 생각입니까.

"팀과의 재계약 협상은 분명히 시즌이 끝난 뒤에 시작합니다. 협상은 대리인인 보라스가 알아서 할 겁니다.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그를 고용했습니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하면 부담이 커집니다. "

- 돈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가 보군요.

"한번도 '얼마를 달라' 거나 '누구만큼은 받아야겠다' 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1천5백만달러, 2천만달러…. 모두가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액수죠.

그 '숫자' 라는 게 사람을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런 데 집착하기 싫어요. 분명한 것은 팬들은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이기고, 월드시리즈 챔피언반지를 많이 가진 선수를 기억한다는 겁니다. 그런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돈이야 많이 받으면 좋지만 이제는 더 많이 이기고, 챔피언에도 도전해 볼 수 있는 야구를 하고 싶어요. "

- 돈은 충분히 벌었다는 말인가요.

"어느 정도는요. 미국에 처음 올 때 세운 목표가 있었어요. 2백억원을 벌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였어요. 허황할 만큼 건방진 목표였죠. 메이저리거가 될지 안될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다년 계약을 하면 한꺼번에 그만큼을 벌 수도 있죠. "

- 그 돈 다 뭐합니까.

"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데 쓸 겁니다. 서울에 있는 나의 매니지먼트회사 '팀 61' 과 출범을 준비 중인 '재단법인 박찬호 장학회' 는 모두 그런 일을 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미국에도 '찬호 팍 드림 파운데이션' 이라는 기구가 있습니다. 교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위한 단체죠. 가진 것을 나눠서 어린이들과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게 제 생각입니다. "

- 돈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팀 동료들 애기좀 해주시죠.

"우리 팀에는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본받을 만한 선수 두명이 있어요. 숀 그린과 개리 셰필드입니다. 둘은 겉으로는 상반된 것 같지만 매우 침착하고 상대를 잘 읽는 장점을 지닌 선수죠. 특히 그린은 상대투수의 버릇을 파악하는 데 귀신같은 재주를 지니고 있어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에서 내셔널리그로 옮긴 첫해라서 다소 부진했지만 올해는 팀의 각종 신기록을 세우며 펄펄 나는 이유가 투수들에 대한 적응이 탁월해서죠. 그는 한가지를 알아낼 때마다 늘 메모를 하고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공에서 눈을 떼질 않습니다.

셰필드는 폼이 불안해 보이지만 워낙 배트 스피드가 빠르고 선구안이 좋아요. 팀 동료들이 '셰필드가 안치면 볼' 이라고 말할 정도죠.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과묵하고 독서를 즐기며 매우 영리한 선수죠. "

- 참, 아까 결혼 이야기를 안하고 지나갔군요. 주위에서 결혼 적령기라는 말을 많이 들을텐데요.

"올해 유난히 팀에 갓 결혼한 선수들이 많아졌어요. 애인인가요? 약혼자인가요? 그들과 함께 원정경기를 다니는 선수들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한번은 고참인 에릭 캐로스가 '원정 다닐 때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지 말자' 고 제의했어요.

아무래도 경기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말이었죠. 팀 성적이 안좋을 때였으니까 나도 속으로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친구들은 달라요. '야구와 가족이 무슨 상관이냐' 라는 거죠. 결국 '야구는 야구' '가족은 가족' 이라는 쪽이 우세해 그냥 같이 다녀요. 요즘 전세기가 꽉 차서 다닐 때도 있어요. "

- 그렇다면 더 결혼하고 싶지 않나요. 야구 선배들도 너무 늦기 전에 생활의 안정을 갖기 위해서라고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2년 전인가요? 선동열 선배가 미국에 오셨을 때 그런 충고를 해주었어요. 결혼하면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보다 안정이 되니까 너무 늦지 않게 하라고요.

당시 어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낯 뜨거운 얘기도 거침없이 하셔서 당황한 적이 있어요. 올해는 이미 지나갔고 내년 정도가 적당하긴 한 것 같은데, 아직 상대를 못 만났어요. "

- 마음 속에 상대의 기준 같은 것이 있나요.

"글쎄요.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할 것 같아요. 나와 부모님,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이죠. "

- 박선수는 한국 야구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메이저리거가 됐고 이후에 많은 후배들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들 가운데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며 지내는 선수가 있나요.

"메이저리그에는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선수만 있죠. 병현이와는 LA나 피닉스에서 맞대결을 하게 되면 한번씩 만나서 식사를 합니다. 배짱이 좋은 친구죠. 나도 그랬지만 초반에 문화에 적응을 못해 곤란을 겪었던 것 같아요.

다른 후배들 가운데는 보스턴 마이너리그의 송승준이 자주 전화를 해 이것 저것 물어보고 상의합니다. 성격이 활발하고 투수로서 가능성도 큰 재목이죠. "

- 이제 세번의 등판이 남았고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중고참이 되는 셈인데요. 남은 시즌에 대한 각오와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단 한줄기의 희망이 남아있더라도 팀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팀이 처져 있는 데다 마지막에 원정 9연전이 잡혀 있어 불리하지만 포기는 안합니다. (내가 등판하는)남은 세 경기 모두 이겨야죠. 그리고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시는 팬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LA=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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