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가벼운 것이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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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4보 (45-64)]
黑. 최철한 9단 白.구리 7단

우상 일대에서 쌍방 최강으로 맞서며 살기 띤 광풍이 몰아쳤으나 먼지가 걷히고 보니 백도 어느덧 깨끗한 삶을 확보하고 있다.몇몇 죽은 돌도 있었다.전쟁과 타협의 희생자들이다.그러나 희생자들은 어느덧 흔적도 없이 치워지고 바둑은 무심히 앞으로 나아간다.57까지의 결말을 놓고 관전자들은 주판알을 튀기고 있다.누가 이득이 있었을까.

실리에선 백이 벌었다.그러나 A의 뒷맛이 남아있고 중앙 흑의 발전성이 귀의 실리를 능가한다는 측면에서 관전자들은 흑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호기심 많고 장난기가 묻어나는 구리의 얼굴이 자못 근엄하다.최철한의 모습도 엄숙하다.중앙을 점령한 흑의 세력은 언젠가 꿈틀꿈틀 일어서겠지만 당장의 위협은 아니다.구리는 다시금 58로 실리를 취해둔다.

최철한은 59로부터 폭을 넓히고 있다.실리는 백의 것.흑은 그러므로 소소한 실리에 연연해선 안된다.꿈을 크게 가지고 중앙과 호응하여 드넓은 황무지를 개척하려 한다.60의 낙하산이 툭 떨어진다.허허벌판에 떨어진 단 한점의 돌.이 가벼운 한개의 돌이 절묘한 시점에서 흑의 갈 길을 묻고있다.

‘참고도’흑1로 받으면 즉시 책략에 걸려든다.백은 그순간 2로 파고들어 또한번 실리를 도려낼 것이다.흑에겐 이제 중앙 뿐이지만 백△ 한점이 세력을 제한하는 근사한 한수가 되는 것이다.

가벼움은 두려운 존재다.훅 불면 날아갈듯한 가벼움은 몽둥이로 칠 수도 없고 칼로 벨 수도 없다.그러므로 이 가벼움을 61부터 무겁게 만든 다음 그때 치는 것이 순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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