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수언론 약화 의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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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언론개혁에 관한 한 그동안 학계에선 공론의 장이 마련된 적이 거의 없다. 일부 급진적 학자들은 개인적으로 시민단체들과 함께 타율개혁을 주장해왔다.

이런 마당에 사회적 논란거리인 언론개혁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서 학계 등에서 지난주 잇따라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언론학회(회장 車培根)와 중진학자 등의 모임인 비전@한국(공동대표 金錫俊 이화여대 교수 등)이 각각 '언론개혁의 쟁점과 이론적 조망' 과 '언론개혁의 바람직한 방향' 이란 주제로 연 세미나들이 그것이다.

특히 발제에 나선 교수들 중 유재천(劉載天.언론정보학부)한림대 교수와 양승목(梁承穆.언론정보학과)서울대 교수는 언론개혁에 관한 첫 공론의 장에서 자율적 또는 온건한 개혁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梁교수는 현재 이뤄지는 언론개혁에 중앙.조선.동아 등 보수언론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진보진영의 정치적.이념적 의도가 개재돼 있다고 보았다. 진보진영이 그동안 현 정부의 개혁정책에 비판적인 보수언론의 보도성향을 문제삼아왔고 이들 신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지 않고선 개혁이 힘들다고 보는 견해를 계속 제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언론개혁 논의의 초점이 보수언론의 변화나 약화에 있기 때문에 언론사 세무조사가 순식간에 보혁(保革)대결을 연상시키는 사회 전체 수준의 갈등으로 발전했다" 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언론과 정부의 갈등이나 내년 대선과 관련된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사회의 헤게모니 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또 세무조사가 사회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라 언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梁교수는 "특정매체의 보도성향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하고 항의할 수는 있지만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존재까지 부정해선 안된다" 고 강조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 매체의 수용자(독자)들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독자를 평가하고 훈계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언론개혁이 이뤄지려면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다" 며 "공영방송을 비롯해 일부 매체가 시민단체와의 공조 속에 보수신문들을 강하게 몰아붙인다고 개혁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의 소유지분 제한과 같은 급진적 개혁은 사회갈등과 혼란만 가중시키므로 언론계.학계.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언론발전위원회' 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제도적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언론시장 기능의 정상화에 필요한 ABC(발행부수공사)제도 등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개혁과제" 라고 강조했다.

유재천 교수는 언론개혁을 위한 기본전제로 여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개혁이어서는 안된다.

둘째, 언론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언론매체의 '도덕적 의무' 에 귀속되므로 자율적 규제에 맡겨야 한다.

셋째, 법률에 의한 개혁은 마지막 선택이며 이 경우에도 최소한이 돼야 한다. 넷째, 정부가 개혁의 주체일 수 없으며 개혁에 개입해서도 안된다. 다섯째, 언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여섯째, 언론개혁의 주체는 언론인 자신들이어야 한다.

劉교수는 "언론개혁의 과제는 언론의 구조개선의 문제에서 정확한 기사 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안인 편집권의 독립문제에 있어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고 (이에 따라)국가가 법적으로 발행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편집규약을 의무화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등에서 국회에 낸 정간법 개정안도 문제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편집위원회 구성 때 노조가 관여하는 것은 편집권이 편집에 관한 직무상 권한이어서 노조 및 기타 압력집단에 대해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영업.기술직 종사자가 노조에 가입해 있는 현실을 도외시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또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한 신문의 시장 점유율이 20% 또는 30% 이상일 때 시장지배적으로 보고 규제하라는 것은 매체의 양적 다양성만 강조하는 셈" 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신문시장이 왜곡돼 있지만 그렇다고 양적 다양성이 반드시 표현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간과한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따라서 형식적 규제를 완화해가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유의해야 하며 신문시장의 독과점 해소는 공정거래법에 따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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