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권력과 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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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디스' 담배는 한갑에 1천3백원. 안에는 담배 20개비가 들어 있다.

어떤 지독한 애연가가 이 담배를 꼭 피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엔 1천원짜리 지폐 한 장뿐이었다. 흡연 욕구에 시달리며 초조해 하다가 옆사람에게 "3백원만 꾸어줄 수 있느냐" 고 부탁했다. 옆사람의 대답. "마침 딱 3백원이 있다. 당신에게 이 돈을 주겠다. 단, 담배를 산 후 나에게 절반(10개비)을 내놓아라. "

애연가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든 담배를 피우고 싶었으니까. 선뜻 3백원을 받아 디스 한갑을 손에 넣었지만, 10개비를 꺼내 넘겨주는 심정은 불편하기만 했다-.

한 민주당측 인사가 민주당.자민련의 공동여당 구도를 빗대 한 얘기다. 그럴 듯한 비유다 싶다.

그러나 자민련으로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담배를 단 한 개비조차 피우지 못했을 것" 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1997년 대선투표 결과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39만5백57표 차이로 이겼다. 이는 JP(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연고를 가진 대전.충남북에서 金후보가 李후보보다 더 많이 얻은 표(40만8천3백19표)와 거의 일치한다. 자민련이 지금까지도 큰소리칠 만하다.

게다가 대선 전 金후보와 JP는 DJP 단일화 합의문에서 '국무위원 임명은 양당이 동등한 비율로 한다' 는 데 머물지 않고 '99년 말까지 내각제 개헌을 완료한다' 는 약속도 했다. 자민련은 "10개비 외에 '담뱃갑 포장도 바꾼다' 고 손가락을 걸었는데 왜 지키지 않는가" 고 따지고 싶을 것이다.

자민련 몫으로 입각했던 오장섭 건교부장관이 그제 전격 경질되고 후임에 JP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김용채 장관이 임명됐다. '자민련 영토' 임이 새삼 입증된 건교부와 산하단체 직원들의 불만은 상당한 것 같다. 민주당에서도 "새 정부 출범 후 자민련 몫 장관 때문에 국정이 흔들린 게 한두 번이냐" "공동정권의 한계" 라는 볼멘 소리와 탄식이 나왔다고 한다. 비록 청와대 대변인만은 "각료배분은 공동정부의 기본정신에 따른 것이며, 많은 선진국들도 그렇게 한다" 고 변호했지만.

요즘 JP 주변에선 3백원으로 담배 절반을 얻는 정도를 넘어 아예 'JP 대망론' 을 펴고 있다. 우리 국민이 JP를 보아온 지 벌써 40년이다. 그게 무슨 속셈인지 대부분 빤히 짐작하고 있다.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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