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신사참배 대응 '가슴보다 머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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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럽 정상이 히틀러 묘역을 참배한 것과 같다"

"일본과는 정상회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 ….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규탄집회가 잇따르고, 13일에는 '열혈시민' 들이 끔찍한 단지(斷指)시위로 항의의 뜻을 표했다.

정치권도 여야 한 목소리로 정부의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한 야당의원은 "고이즈미 재임 중에는 통상적인 외교에서 벗어나 군국주의 부활을 주시하는 특별관리 방식으로 한.일 관계를 바꿔야 한다" 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일 관계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의 문제로 삐걱거리는 와중에 일본 총리가 스스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를 찾아 머리를 조아린 데 대해 분노와 배신감이 이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다.

그러나 거세게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전부여선 안된다. 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본질이 일본의 신국가주의 조짐이라면 대증적(對症的) 응수보다 장기적 대책과 국내외 역할분담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민단체들이 아시아 각국의 비정부기구(NGO)와 연대해 일본을 압박하는 일도 고려해볼 만하다. 한 일본전문가는 "세미나 등을 통해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두 얼굴을 심도있게 짚어봐야 한다" 고 말한다. 그래야 뒤가 무르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조급하게 우리의 '카드' 를 다 내놓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많다.

중국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후 1개월이 지나서야 초강경 자세를 드러냈다. 참배 직후엔 "우호 관계를 소중히 해야 한다" (胡耀邦총서기)는 말에 그쳤을 뿐이다.

나카소네는 결국 중국의 본격적인 항의에 밀려 "앞으로 공식참배를 않는다" 고 약속했고, 재임 중 이를 지켰다.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릇된 역사인식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장(場)은 널려 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와 이해득실을 저울질해가면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자세가 절실한 때다.

오영환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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