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헌문건 진상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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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권의 개헌 문건' 과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전략문건' 으로 정치권이 시끌벅적하다. 하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남북평화협정 체결의 성과가 있으면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이고, 다른 문건은 민주.자민련.민국당의 이른바 'DJP+α' 단일후보 선출 방안을 담고 있어 그 파문이 오래 갈 만하다.

한나라당은 문건 작성자로 일부 언론에서 지목한 민주당 박양수 의원이 권력 내 실세그룹인 동교동계인 점을 들어 "남북문제를 악용한 개헌과 정계개편을 통한 재집권의 음모가 담겼다" 고 단정하고 이를 김대중 대통령과 연결지어 공세를 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출처불명의 괴문서' 라고 일축하고 있고, 朴의원도 "나도 모르는 문서" 라고 맞서고 있어 혼란스런 상황이다.

문건에는 여권 내 대선 예비 주자들의 장단점을 실감나게 분석한 대목이 담겨 있는 탓에 '개헌할 생각 없다' '우리당을 음해하는 불순세력의 작품' 이라는 민주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게임의 룰과 정치판을 새로 짜자는 부분 등 정권 재창출의 여러 전략은 여권 일각의 고민을 반영한 듯한 측면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문건의 진위 파악에 나서야 한다. 작성자로 의심받고 있는 朴의원이 오랜 기간 현장에서 당 조직을 맡아왔고, 지금도 총재 조직특보인 만큼 야당의 공세를 반격하는 수준에 그칠 게 아니라 문건의 출처 추적 등 짜임새 있는 진상규명이 뒤따라야 한다.

진상 규명과 함께 개헌론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환기코자 한다. 현행 헌법에서 개헌은 두 단계를 거치도록 돼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라는 장치를 마련한 데는 과거 6.29 때처럼 국민적 합의 없이는 개헌을 하지 말라는 뜻이 깔려 있다. 지금 시점에서 개헌론은 정치적 혼란에다 국민분열을 초래한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과 반목은 해방공간 못지 않게 심각하다. 金위원장의 답방과 연결지은 개헌론은 그런 대치와 반목을 치명적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개헌론을 접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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