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40억 들인 문화의 거리 새단장 헛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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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주차장인지, 쓰레기장인지…. " 지난 27일 오후 외국인 친구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찾은 정희경(26.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인사동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보도에 수십여대의 노점상 리어카가 어지럽게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영업시간 전이라 비닐 등으로 덮여 있는 리어카들은 마치 피난길 마차 행렬을 연상케 했다. 주변엔 지난 밤 영업 후 길에 내다버린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풍겼다.

정씨는 "인사동 입구는 몇달 전만 해도 넓은 보도에 돌벤치가 있어 운치를 더했는데 오늘은 첫인상부터 구겼다" 며 씁쓸해했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4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0월 역사.문화 탐방로로 새단장한 인사동길이 무단 방치된 노점상 리어카들로 인해 '짜증길' 로 전락했다.

노점상 리어카는 낮엔 포장을 씌운 채 도보를 점령하고 밤엔 국적불명의 상품을 파는 가판대로 변해 인사동의 이미지를 구기고 있다.

리어카들이 보도를 점령하고 있는 바람에 시민이나 관광객들은 차도로 걸어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이날 오후 6시쯤이 되자 노점상 리어카의 주인들이 하나둘 나타나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나라야 상품 다량 입하' '구찌 진품' 등 판매하는 물건도 외제 일색이다. 액세서리.음식 가판대까지 가세해 보도에 일렬종대로 늘어선 리어카에 손님들이 몰려들자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를 피해가느라 짜증이 더 난다.

인사동길 내부도 사정은 마찬가지. 떡볶이.어묵을 파는 노점상은 아예 길가에 전용 트럭을 버젓이 주차해 차량들이 이를 비켜가느라 경적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실정을 보다 못한 일부 상인들이 "노점상 영업이 끝나는 시간만이라도 리어카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 고 요구하고 있으나 종로구청측은 단속 인력 부족을 이유로 나몰라라 하고 있다.

현행법상 노점상 리어카를 무단 방치할 경우 도로 무단점용으로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으나 리어카 노점상 주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노점상 金모씨는 "리어카를 다른 곳에 갖다놓는 것도 일이어서 그냥 여기에 놔둘 수밖에 없다" 며 "실제로 단속을 받은 적도 없다" 고 말했다.

결국 당국의 무관심과 노점상의 무단방치로 인해 인사동의 모습만 이지러지고 있는 것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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