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정서 대변한 변협 결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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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변협이 힘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 발표했다.

현 정부의 개혁이 합법성과 정당성을 요구하는 실질적 법치주의에서 현저하게 후퇴했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의 개혁이 실질적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사회 전체와의 통일적 조화 및 질서아래 진행되기를 갈망한다는 내용이다.

문민정부 이후 대한변협이 정부 정책에 대해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면서 정부가 가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한 대단히 의미있는 결의문이다. 정곡을 찌른 적절한 충고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정부 개혁정책의 문제점을 변호사단체가 지적한 것은 만시지탄이 없지 않다. 결의문에 나타난 대한변협의 현실 진단과 정부에 대한 충고는 비단 재야 변호사들만의 의견이라고 하기보다 대다수 국민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변호사들이 결의문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또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대한변협의 결의문을 일부 변호사들의 편협한 견해에 불과하다고 그 의미와 가치를 폄훼하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답답하고 딱한 일이다. 공익단체임을 표방하는 대한변협이 지금까지 자신들의 직업적인 특권을 지키는 데는 일사불란하게 단결력을 과시하더니, 막상 당연한 공익적인 발언을 하는 데는 파열음을 내며 분열상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이다. 그럴 바에야 이번 기회에 변호사단체도 복수화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대한변협의 결의문은 내용면에서도 법률전문직인 변호사들이 당연히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형식적 법치주의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실질적 법치주의를 촉구한 내용이나, 목적만을 내세워 방법과 절차를 무시한 개혁 드라이브의 잘못을 지적한 내용이나, 모든 개혁이 사회통합과 조화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이 하나같이 너무나도 당연한 법의 지배를 위한 필수적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가 아닌 힘의 지배, 사람의 지배가 위력을 떨치는 상황에서 사회정의는 실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들이 법의 지배가 멀어지는 현실을 보고 침묵하거나 외면한다면 대한변협은 한낱 사사로운 이익집단에 불과할 뿐, 거창하게 공익단체임을 내세우기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대한변협은 오랜만에 공익단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대한변협의 결의문에 담긴 내용이 설령 듣기 싫고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법률전문가들의 솔직한 생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겸허하게 반성하고 수렴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부의 반응처럼 진솔한 충고를 오히려 적대적인 비판으로 매도하면서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는 정책으로 일관한다면 참으로 우려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참으로 위기 상황이다. 법치 뿐 아니라 정치가 실종된 지도 이미 오래고, 통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정책들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정권유지의 수단으로만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주권자인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는 정권이 유지되기 어렵고 새로운 정권이 창출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국민주권의 자유민주주의다. 바로 그 점이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자유민주주의를 매우 소중한 가치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대한변협의 결의문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몸부림의 하나다.

許營(연세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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