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인도네시아는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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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도네시아 역사상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 와히드가 헌법이 보장한 임기 3년을 남겨놓고 탄핵으로 추방된 것은 정치후진국들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유례가 드문 사건이다.

탄핵사유로 비리의혹과 실정(失政)이 제시됐지만 그런 것은 야당의 공격자료는 될 수 있어도 대통령 탄핵사유로는 함량미달이다. 와히드 탄핵은 의회의 쿠데타다.

***대통령 위에 있는 국민協

와히드의 불행은 두 군데서 비롯된다.

첫째, 그는 정치적인 타협으로 선출된 여소야대의 대통령임을 깜박 잊은 듯 각료임명을 포함한 주요 결정에서 야당과 부통령 메가와티의 존재를 무시했다.

둘째, 수하르토의 장기독재를 청산하는 정치개혁에서 대통령의 지위가 너무 약화돼 정치적인 행동반경이 너무 좁다.

와히드를 탄핵한 국민협의회는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최고 권력기구지만 사실상 국회의 통제 아래 있다. 국민협의회 아래 있는 대통령은 말하자면 국회의 다음 다음 단계에 있는 셈이다.

대통령에게는 국회해산권도 없다. 이런 권력구조에서 의석분포가 여소야대인 경우 대통령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와히드를 밀어내고 대통령이 된 메가와티도 예외가 아니다. 1만3천개의 섬 가운데 3천7백개의 유인도에 3백개의 잡다한 종족이 흩어져 사는 원심분리적인 인도네시아에는 작은 것들까지 합치면 2백개 이상의 정당이 있다. 와히드 탄핵에 힘을 합친 정당들이 집단이기적인 동기에서 언제 충돌하고 갈등하고 대통령을 상대로 정치공세를 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군대의 성격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복잡하다.

수하르토시대 인도네시아 군은 헌법으로 정치참여를 보장받고 있었다. 국민협의회에도 국회의원 및 지방대표들과 함께 군의 대표들이 들어가 있었다. 정치개혁에서 군의 정치참여와 경제활동의 폭이 줄어들기는 했어도 인도네시아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군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동티모르와 이리안 자야와 아체의 소수민족들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가한 것도 군이 과거의 특권에 길들여진 결과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군 예산의 25%에서 30%밖에 지원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군이 스스로 벌어서 써야 한다. 그래서 경제의 노른자위 이권에 군이 참여한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채권국가들의 요구로 착수한 개혁에 군의 돈벌이를 제한하는 조치가 들어 있지만 대기업군(群)으로서의 군의 위치는 여전하다. 그런 군이 이번 정변(政變)에서 와히드 실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메가와티정부에서 군이 강화된 발언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군과 경찰이 와히드의 비상사태 선포에 협력했다면 외히드 탄핵은 저지됐거나 유혈사태를 빚었을 가능성이 크다. 군이 와히드에게 등을 돌린 것이 전통적인 와히드 지지세력들의 대대적인 시위를 견제한 것으로 보인다.

의회가 대통령을 정치공작으로 밀어내는 비민주적인 과정에서 메가와티와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은 군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정치의 중심에 복귀한 군이 메가와티정부에 요구할 물목(物目)이다.

외환위기 때 미국의 클린턴정부와 국제통화기금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지원의 조건으로 외환위기와 관계가 있건 없건,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건 장기적인 문제이건 상관않고 과격한 개혁을 강요했다.

그래서 15개의 은행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식품과 난방용 석유에 대한 독점이 금지되고 정부보조가 끊겼다. 실질임금은 한국의 10%에 비해 42%가 떨어지고, 1999년의 부실채권은 한국의 19%에 비해 45%나 되었다.

***경제위기 해결이 급선무

와히드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한 경제위기의 유산은 메가와티에게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국정수행의 능력에서 메가와티가 와히드보다 낫다는 평가는 없다. 경제.사회문제의 도전은 벅차다. 거기에 와히드 탄핵 때 공동전선을 편 정당들이 전리품 분배에서 갈등하고 충돌할 우려는 적지않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넷째로 많은 인구와 방대한 자원을 가지고 동남아시아 해상수송로의 길목에 위치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다. 한국도 투자와 교역과 자원수입으로 경제관계가 밀접한 나라다. 전망은 어둡지만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 메가와티의 성공을 빌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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