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네거리 평화방송·백병원 정류소에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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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기도 분당에서 서울 남산 1호 터널까지 버스전용차로로 오면서 아낀 시간을 정작 정류소 몇백m 앞에서 다 까먹습니다. 중앙차로제 하나마나입니다.”

12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앞 중앙차로 정류소에 들어서려는 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조용철 기자]

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 네거리에 있는 평화방송·백병원 버스 정류소. 성남에서 오는 8150번 버스에서 내리면서 김진호(39·성남시 분당동)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가 분당에서 오전 7시50분에 탄 버스가 남산 1호 터널을 빠져나온 시각은 8시30분, 그러나 1㎞를 더 가 정류소에서 버스를 내린 것은 30분이 지난 뒤였다.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중앙차로제가 정류소 공간 부족 등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방송·백병원 버스 정류소에는 5500·9401·9000번 등 분당·수원에서 서울 4대문 안으로 진입하는 광역 버스와 471·408번 등 강남·송파 쪽을 돌아오는 간선 버스 등 20여 개 노선이 통과한다.

출근시간대에 버스가 한꺼번에 몰리는 곳이지만 이 정류소에는 버스가 동시에 세 대만 정차할 수 있을 뿐이다. 정류소를 지나면 곧 바로 신호등이 있어 손님이 내리고 난 뒤의 버스가 정지신호에 걸리기라도 하면 다음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이날 오전에 길 때는 40여 대의 버스가 남산 1호 터널 부근까지 늘어섰다.

분당~서울을 오가는 5500-2번 버스를 7년째 운전하는 이창선(41) 기사는 “목적지까지 다 왔는데 정작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승객이 많다”며 “수학여행 온 관광버스들이 많이 몰리는 4~6월에 특히 정체가 심하다”고 말했다.

정류소 진입 시간이 길어지자 편법 정차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광역버스들은 전용차로를 벗어나 잇따라 차선을 바꾼 뒤 갓길에 손님을 내려줬다. 정류소에 들어서기 전에 도로에서 출입문을 열어주는 버스도 있었다. 정류소가 아닌 곳에서 승객을 하차시키다 적발되면 운전자는 10만원 안팎의 과태료, 운수회사는 10만원 안팎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한 광역급행버스 운전기사는 “정차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출근이 급한 승객들이 갓길에라도 빨리 내려줄 것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세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은 한 정거장 전인 한남동·단국대 정류소에 내려 남산 순환도를 달리는 노선으로 갈아타기도 한다. 수원에서 출퇴근하는 이정락(51)씨는 “버스가 남산 1호 터널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내려 남산을 경유해 광화문까지 가면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시간은 오히려 절약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국준 서울시 도로교통시설담당관은 “일부 중앙차로 정류소에서 정차 대기 현상이 벌어지는 문제를 알고 있다”며 “평화방송·백병원 정류소의 경우 정차 면을 2개 더 늘리기 위한 공사를 이달 중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 담당관은 이어 “공사가 끝나는 6월 이후에는 정차 대기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박태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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