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이 '최후의 독재권력' 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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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의원들의 언론에 대한 언어폭력이 끝간 데를 모르고 있다.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이들의 언론에 대한 집중 공격은 그 속에 숨어 있는 증오와 적대감의 무게 때문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언론을 '최후의 독재권력' 이니 ' 반개혁.반민주.반통일 세력' 이라고 매도하는 대목에서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혹시 과거 민주화투쟁을 하던 시절 형성된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옳다" 는 식의 오만함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면 이는 그들이나 언론에 모두 불행이다.

더구나 이런 발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여당 내에서 한 목소리로 쏟아져나오는 데에는 권부(權府) 핵심의 치밀한 사전 정지작업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당장 엊그제 민주당 확대간부회의 내용을 보자. 연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언론개혁' 발언 이후 언론에 대한 공격에 앞장서온 노무현(盧武鉉)고문은 "언론은 최후의 독재권력으로 남아 있다" 며 사회민주화 차원에서의 정면대응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2월에는 "언론과의 전쟁 선포도 불사해야 한다" 며 "조폭(組暴)적 언론이란 말에 공감한다" 고 말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23일에는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고문회의에서 "수구언론은 개혁의 저지세력이고 반통일 세력으로서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아 왔다" 고 발언했다.

그의 일련의 발언은 일부 언론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언론을 '조폭' 또는 '독재권력' 으로 모는 이유가 무엇인지, 민주사회의 정치지도자를 자부하는 사람이 어떻게 언론을 이처럼 비민주적이고 언론폭압적으로 몰고 있는지 그의 분명한 논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은 "특정 언론이 자사 이기주의를 위해 별짓을 다한다는 인식이 형성될 때 세무조사의 성패가 가름될 것" 이라고 했다고 한다.

언론을 계속 몰아붙여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면 언론사가 '무슨 짓' 이라도 할 것이며, 그것을 빌미로 소위 '언론개혁' 을 더욱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盧고문과 李의장의 발언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투명경영 유도 차원이 아니라 언론을 투쟁대상으로 삼아 언론과의 전쟁에서 '승리' 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최근 민주당 정풍(整風)파동 때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을 비난해 파문을 일으켰던 김민석(金民錫)의원은 "파렴치한 일부 악덕 족벌사주의 불법 세금탈루에 대해 법과 선례에 따라 반드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족벌사주' 의 불법 세금탈루 내용이 해당 신문사에 아직 통보조차 되지 않았다는데 무엇을 근거로 악덕과 불법을 규정하고 있는가. 언론의 고유기능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 기능이다. 이 기능을 독재권력.수구세력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부하고 압살하려 든다면 이들이야말로 끊임없이 독재권력을 추구하는 구시대 정치인 아니겠는가.

어제 민주당 대변인은 '언론자유가 만개한 국민의 정부' 임을 누누이 자랑했다. 그런데 '국민이 언론자유가 활짝 핀 것을 피부로 느끼는' 현 정권 아래서 왜 유독 언론탄압 얘기가 많이 나오는가. 언론은 지면을 통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언론을 향해 다양한 공격무기를 갖춘 정권이 전쟁을 선포했다면 당장의 결과는 뻔하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권력과 언론 관계가 이런 식으로 진행돼선 안된다. 여당 의원들이 시급히 이성을 회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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