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늦게 온 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이런저런 봄의 기억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되짚어보니 유난히 겨울을 싫어했던 것만큼이나 봄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릴 땐 새 학년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와 한 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들떴었고, 중학생 때는 우등생이 되어 보겠다며 눈을 티 나게 반짝이며 학교로 달려가 맨 앞자리에 앉았던 3월의 새벽이 생각난다. 교복 자율화 첫 세대였던 여고생 시절, 분홍색 칼라가 달린 셔츠와 블루진 스커트와 조끼 한 벌을 마련해 놓고, 거울 앞에 서서 입학할 날만 세던 때도 있었다. 연노랑 스프링 코트를 사 입고 엉거주춤 기자 흉내를 내기 시작한 때도 4월 초의 봄이었다. 제대로 된 가족 외출 한번 안 시켜주던 무뚝뚝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갑자기 가족들을 한강 중지도에서 열린 독일 서커스 공연에 데리고 갔던 것도 이십 년 전쯤의 봄이다. 가족들이 함께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나는 아마도 이것이 나에게 가장 아름답게 기억될 봄 밤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하나도 대단할 것 없는 것들뿐이다. 그저 보통 사람들의 봄이 다 이러하리라. 새 출발과 설렘, 바람과 꽃과 연결된 소소하게 웃음짓는 기억들.

버스 안 라디오에서 전하는 사고 속보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떤 이들에게 올해의 봄만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봄은 없을 것이다. 단지 그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돌덩이가 내려앉는데, 차디찬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던 그들과 남겨진 이들의 심정을 우리가 미루어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3월이 다 가도록 미련하게 오지 않던 봄은 유난히 차가운 파도와 바람으로 이 참사를 더할 수 없는 비극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그토록 늑장을 부렸던 것일까.

다시 버스 안에는 노래가 흐른다. 화사한 듯 처연한 ‘개여울’의 노랫말이 아리게 다가온다.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나오고, 잔 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그들도 좋은 계절에 설렘과 새 출발, 그리고 봄바람과 꽃놀이 같은 평범한 봄 소망을 품었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창밖의 햇살이 따갑게 얼굴을 비춘다. 느리적거리며 왔기에 더 반가워야 할 올해의 봄 햇살은 이제 어쩐지 원망스럽다. 어쨌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봄볕은 세상을 밝히고 꽃은 피어나고 때가 되면 또 그렇게 지나갈 것이니까. 노랫말 따라 당신들을 ‘부디 잊지’ 않겠다는 말을 조용히 되뇌어보지만, 이게 무슨 소용이나 있겠는가.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