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흡연자가 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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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파탄 위기에 처한 지역의보 재정 지원을 위해 정부.여당이 담배에 붙는 건강증진기금을 현재의 갑당 2원에서 1백50원 가량으로 대폭 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실무 합의가 끝나는 대로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을 국회에 제출,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하니 담뱃값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안이하고 편법적인 발상이다. 더구나 건강증진기금은 준조세란 점에서 목적세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던 정부의 약속과도 배치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말 건강보험 재정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지역의보에 대한 정부 지원을 50%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1조4천억원 정도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발표를 전후해 여권은 건강증진기금을 인상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닥치자 검토단계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다 최근 들어선 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는 지역의보 재정 확충을 위해 7천억원이 책정돼 있다.

저소득층인 의료보호 대상자의 체불 진료비만 6천억원에 이르러 추경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제 다시 건강증진기금을 한꺼번에 75배로 올리겠다니 진료비 체불이든, 지역의보 재정 적자든 모두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해결하겠다는 것 아닌가.

정부는 그동안 의약물 오.남용과 약화(藥禍)를 막기 위해 의약분업 시행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주사제 남용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의원 외래 환자의 주사제 처방률이 의약분업 시행 전인 지난해 5월 60.8%에서 분업 이후인 올 2월 54%로 다소 낮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50%를 넘었고, 대학병원의 경우 주사제 처방률이 12.3%에서 21%로 오히려 늘어났다.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이며 의료개혁인가.

정부와 여당은 국민 주머니를 털어 적자를 메우는 땜질식 처방에 그칠 게 아니라 이제라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국민은 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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