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왜 기여입학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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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년 후도 지금의 '한국인' 같은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을까. 미상불 이런 상태로는 절망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대학의 기능이 상실되고 '한국인' 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교육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학문 문 닫는 판국

대학은 지식의 창출지며 축적지다. 예나 이제나 최고의 지식은 대학에서 나오고 대학으로 집중된다. 특히 지난 세기 중반 이후 미국 대학들의 빛나는 업적은 노벨상을 석권하는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지금도 미국 지식인들은 앞으로 1백년도 더 미국의 세계 지배는 계속된다고 자신하고 있다. 유일의 이유는 미국 대학들의 창의력이다. 이런 미국 대학들의 강점은 기초학문에 있다. 자연과학에서 수(數學).물(物理).화(化學).생(生物), 인문사회에서 문(文學).사(史學).철(哲學)이다. 순수학문으로서의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또한 기초학문이다.

이 기초학문이 지금 한국에선 단말마(斷末魔)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학에 기이한 시장논리가 적용되면서 취업에 직결되는 직업학과만 살아남고 기초학문들은 모두 문을 내리고 연구를 그만둬야 하는 판국이 됐다. 기초학문의 연구 없이 응용학문이 존속할 수 있느냐, 혹은 기초학문의 발전 없이 직업학과들은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비판은 이미 지겨울 정도로 나온 소리다. 이제 어떻게 말해도 공염불이고 중언부언으로밖에 듣지 못한다.

어째서 우리 대학들은 그렇게 '자멸하는 쪽' 으로 달려가고 있는지, 더 기이한 것은 기초학문에 가장 충실하고 투철해야 할 국립대학, 그 중에서도 서울대가 앞장서 '그렇게 죽어도 좋다' 는 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건지, 누구도 묻지 않고 누구도 질타 한번 안한다는 것이다.

서울대생의 태반이 고시공부를 한다는 사실은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정부 지식' 이 '시장 지식' 보다 말할 수 없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 낮은 세계를 향한 그 공부를 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것인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보겠다는 것인가.

겨우 '밥먹고 사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그 공부에서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밥먹고 사는 것은 개도, 소도, 말도 하지 않는가. 일찍이 밥 못먹어 굶어죽었다는 소.말.개.돼지를 들어본 일이 있는가.

세계는 이미 디지털시대고, 디지털의 세계는 아톰(atom)이 아니라 비트(bit)로 구성된다는 것 또한 너무 숙지된 사실이다. 그 숙지의 사실 만큼 아톰으로 구성되지 않는 비물질의 세계, 곧 정신의 세계며 감성의 세계가 더 중요하다.

문.사.철에 의한 높은 감성과 뛰는 가슴, 깊은 감동의 하이터치(high touch) 없이 하이테크(high - tech)의 창조는 불가능하게 됐다. 기초학문 자체가 문화 창조, 문화 정체성으로 직결된다. 응용학문으로는 개념화할 수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하이터치의 기초학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시대에 겨우 '밥먹고 사는' 그 공부를 시키기 위해 국민들이 그 아까운 혈세를 내고 있다면 도대체 국립대학의 기능은 무엇인가. '일신의 영광이며 가문의 영광' 이라는 어느 법무부장관의 도저히 동시대인이라고 할 수 없는 태산성은(泰山聖恩) 같은 발언이나 발상을 하자고 국립대학이 그 많은 학생들에게 그 공부를 시키고 있단 말인가.

그런 국립대학의 구조며 행태를 지금 누가 감히 바꿔놓을 수 있는가. 눈앞의 직업전선에 주박(呪縛)된 그 국립대학의 현실을 누가 감히 순수학문 쪽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가. 그 어떤 구조조정 그 어떤 방향전환의 노력도 도로(徒勞)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번연하다.

***사립대의 공멸 막았으면

그렇다면 기초학문을 일으키고 학문을 진작하는 사명은 사립대학이 맡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현재의 실상으로는 몇몇 사립대학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립대학은 재정이 빈약하다. 등록금도 학생 허락 없이는 올릴 수 없다. 학문과 대학의 공멸을 향한 국가의 간섭은 주술을 외우는 광신도보다 더 광적이다.

거기에 기여입학제는 더더욱 안된다고 영단을 내리고 있다. 시민들이여, 국민들이여, 정부여, 대학이 모두 다 죽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열 사람의 김우중보다 한 사람의 정현종(시인), 한 사람의 최인호(소설가)를 더 내기 위해서도 기여입학제가 필요하다. 제발 허용해 주시라.

송복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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