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에케스 사격장 2003년 폐쇄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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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리브해 비에케스섬을 해군 포.폭격 훈련장으로 사용해온 미국 정부가 조만간 섬의 훈련기지를 폐쇄하기로 했다.

이 결정은 훈련장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온 주민과 이들을 지원해온 비정부기구(NGO)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을 방문 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4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미 해군은 적당한 기간 내에 다른 훈련장소를 찾을 것" 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리들은 훈련장 사용에 관한 협정이 만료되는 2003년 5월에 폭격훈련이 중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곧 사격장을 잃게 되는 해군 지휘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실전 상황을 훈련하는 장소로 비에케스만한 곳이 없다" 며 부시 대통령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비에케스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오른쪽에 있는 인구 9천여명의 작은 섬. 1898년 대(對)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 식민지였던 이곳을 차지했다. 해군은 1941년부터 이 섬을 훈련기지로 사용했으며 함정의 포격과 함재기의 폭격을 위한 사격훈련장은 섬 오른쪽 끝에 있다.

소음 등 각종 피해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사격장 철수를 요구해왔다. 99년 4월 미군의 오폭으로 사격장 민간 경비원 1명이 사망한 후 반대시위는 격렬해졌다. 지난 4월에는 시위주민 1백80여명이 미군 영내를 침입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다.

9천여 주민들은 오는 11월 미군이 2003년 5월 이후에도 계속 훈련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각종 경제적 지원을 받는 방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를 놓고 투표할 예정이었다.

미국 정부는 여론조사에서 이를 거부하는 주민이 55~88%에 이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미리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결정으로 한국 매향리와 일본 오키나와 등 외국에 있는 미군 사격장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미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상원 군사위원회의 제임스 인호페 의원(공화)은 다른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고든 잉글랜드 해군장관을 만난 후 "해외의 많은 미군기지들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며 "비에케스 사격장을 잃으면 다른 사격장도 잃게 될 것" 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의 밥 스텀프 하원의원은 "잘못된 방향의 조치로 나쁜 선례가 될 것" 이라고 말했고 제임스 핸슨 하원의원도 "그들(병사)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생명을 잃게 된다" 고 주장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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