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15선언 왜 답보상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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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15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을 맞는 우리의 감회는 매우 착잡하다. 남북이 분단과 냉전의 반세기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협력의 본격적인 물꼬를 트면서 민족사의 새로운 전진과 웅비를 금방이라도 기약할 것 같았던 그 환희와 감격은 지금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6.15 정상회담은 분단사의 대결적 고리를 끊고 화해와 공영의 다리를 놓는 5개항의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북 장관급 회담 네차례, 국방장관 회담 한차례, 남북 이산가족 상호 교환방문 세차례,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 등이 이어졌고 경의선 연결 합의와 투자보장협정을 포함한 4개 경협 합의서 체결, 식량 50만t 및 비료 20만t의 대북 지원, 8천여명의 상호 방문(금강산 관광객 제외) 등 경협과 교류가 활성화됐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미국의 부시 정부 출범 이후 4개월여 동안 교착 국면에 빠져 있다. 각종 당국간 회담이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이 제도화와 정례화에 합의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대를 모았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은 언제 실현될지 미지수다.

6.15의 빛난 진전을 탈색시키는 이러한 국면은 원인이 어디에 있든 대단히 아쉽다. 남북 당국이 현상 타파를 위한 진취적 접근에 나서야 할 적기로 보이는 시점이지만 아직 그런 결정적 기미는 잡히지 않고 있다.

남북은 교착 국면의 원인을 상대방 또는 제3자에 전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양쪽이 남북관계의 진전을 민족적.국가적 관점에서보다 정권의 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하지는 않았는지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한다고 본다.

최근의 제주해협 무해통항권에 대한 양쪽의 엇갈린 인식과 주장은 남북의 공식.비공식 교섭사에서 불투명한 영역이 그만큼 넓고 크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서로가 기대와 실행 사이에 상대방을 의심하고 불만스럽게 여기는 골이 깊어졌고, 그 결과 남북관계 진전에 중대한 장애요인이 조성된 것은 아닌지 서로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내부 성찰을 토대로 남북 양측은 6.15의 민족사적 감격을 승화.발전시키는 능동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선 양측은 교섭에서 불가피한 이면합의를 최소화하고 투명하고 원칙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남쪽이 북한을 도와야 하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북한을 흔쾌히 도울 수 있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정부는 대북정책의 분명한 원칙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자세가 중요하다. 북한은 남쪽 동포들의 마음을 사는 행위를 실천적으로 보여야 한다.

회담의 일방적 중단, 사전협의 없는 영해나 관할수역의 침범, 시혜를 베푸는 듯한 북한 입국의 선별적 허용 등과 같은 행태로는 스스로 우리에게 촉구하는 '민족 공조' 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金위원장 답방은 '시혜' 의 성격이 아니라 민족에게 행한 약속이다. 다행히 북.미 접촉도 재개된 상황인 만큼 북한은 그동안 걸었던 빗장을 풀고 남북 대화에 바로 나와야 한다.

6.15 선언이 7.4 공동성명 또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통한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이라는 6.15 선언의 기본정신을 제도화.정례화하는 노력을 남북 당국이 이젠 실천에 옮길 때다. 그 때문에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긴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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