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칼럼] 부시-블레어 탱고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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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는 블레어 정부가 아주 형편없는 정부라고 욕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블레어 정부는 지난 시기의 정부보다 훨씬 더 낫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일을 했다. 만약 내일이 선거라면 우리 모두 이 정부에 다시 표를 던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밝혀내고자 하는 것은 블레어 정부가 좌파의 오랜 전통에 입각해서 어떤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 1998년 에릭 홉스봄이 한 좌파 세미나에서 행한 발언이다 (『제3의 길은 없다』, 당대, 1999).

*** 홉스봄 예언 그대로 적중

홉스봄의 예언은 내일 아닌 3년 뒤의 선거에서 정확히 들어맞았다. 지난주 영국 유권자들은 노동당에 표를 던져 블레어 정부에 승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전체 의석 6백59개 가운데 노동당은 4백13개를 차지함으로써 선거 전에 비해 오히려 6석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보수당 18년의 집권을 뒤집은 1997년 선거의 압승을 이번에 다시 실현했고, 나아가 노동당 1백1년의 역사에서 최초의 연임을 기록했다니 블레어로서는 충분히 흥분할 만하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유럽연합(EU) 15개국 가운데 우파 정권은 스페인과 아일랜드뿐이었으나 현재는 이탈리아.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가 가세해서 모두 다섯 나라로 늘어났다.

좌파 퇴조의 시류에 맞선 영국의 돌출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글쎄, 생각해보라. 대처 같은 사람이 다시 총리가 되어서 부시-대처 탱고가 세계를 휩쓰는 그 끔찍한 광경을!

홉스봄이 평한 형편없지 않은 정부, 그래서 골수 마르크스주의 사학자가 공산당 대신 표를 던질 노동당 정부는 과연 어떤 정부인가? 먼저 블레어의 '당내' 개혁이다.

전통적으로 노동당은 막강한 노동조합회의(TUC)의 원내 '거수기'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이를 고쳐 전당대회에서 행사하던 노조의 투표권 지분을 90%에서 50%로 줄였으며, 노조의 지구당 헌금을 막고 이를 중앙당으로 돌림으로써 노조와 특정 정치인의 유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소위 신노동당(New Labour)으로의 이런 변신에 구좌파가 '노동 없는 노동당' 이라고 성토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당외' 설득이 있다. 국내총생산의 41%를 - 프랑스와 독일은 53%와 48%나 되지만 - 공공지출로 사용하는 '큰 정부' 의 낭비를 반성하고, 국영기업 민영화와 '일하는 복지(workfare)' 약속에 재계가 안도한 것도 블레어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다음으로 블레어의 성공과 좌파 전통의 관계이다. 좌파면 어떻고 우파면 어때. 국민을 잘살게 하면 됐지 따위의 시각에서 보자면 홉스봄의 이의 제기는 그야말로 생트집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항의가 실은 좌파가 아니면서 좌파의 탈을 쓰고, 그래서 좌파의 대의를 그르쳐서 안된다는 지적이라면 신중히 들어둘 필요가 있다. 대처 시대는 갔다는 노동당의 선전(CM)에도 불구하고 블레어가 '바지 입은 대처' 라는 인식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보수지 더 타임스가 노동당의 개혁을 지지하는 대신, 진보적 경향의 가디언이 그 개혁을 걱정할 만큼 노동당 진로에 대한 기대는 제멋대로가 아니라면 그야말로 '엉망진창' 이다. 좌냐 우냐의 논쟁은 단순한 입씨름이 아니다. 사민주의 전통이 강한 '대륙' 국가들과의 교섭에 - 당장 유로(euro)가입 현안에 - 좌파의 정체성 문제는 한결 중요한 변수가 될지 모른다.

*** '제3의길'로 들어선 영국

블레어의 등록상표 '제3의 길' 은 이번 선거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념 코치 앤서니 기든스는 제3으로 부르든 말든 영국이 그 길로 들어선 것은 이제 기정 사실이라고 역설한다. 블레어는 자신의 노선을 급진 중도(radical center)라고 표현한다. 중도면 중도지, 거기 무슨 수식어가 붙으면 중도의 순수성을 잃고 만다.

더욱이 프랑스의 조스팽 내각은 강력한 좌파에 의해, 독일의 슈뢰더 정부는 녹색당에 의해 어느 정도 그 급진성이 담보된다. 블레어의 '급진' 에는 그런 안전판이 없으며 기껏해야 인기 위주의 인민주의(populism)가 있을 뿐이다.

"신노동당은 재선 성공이 아니라, 다른 기준에 의해 역사와 민중의 심판을 받을 것" 이란 홉스봄의 험담(?)과 경고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나로서는 그 다른 기준의 하나가 미국의 영국 아닌 유럽의 영국이면 좋겠다. 레이건-대처, 클린턴-블레어의 신자유주의 강요에 세계가 많이 지쳤기 때문이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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