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이 등 돌린 총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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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동운동의 성패는 국민의 지지도에 달려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국민이 그렇게 반발하고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총파업을 강행함으로써 스스로 제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국의 대처 전 총리나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과 달리 연성(軟性)노동정책을 펴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마저 공권력의 강력 대응을 지시하고, 항공 조종사의 파업에 대해 "고임금 소득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고 말한 데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金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노동관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이번 파업의 지나친 과격성과 불법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누차 지적했듯 이번 총파업의 경우 민주노총과 단위 노조의 주장은 지나쳤으며, 파업행태는 불법적이었다.

민주노총은 미사일방어(MD)체계 반대와 현 정권 퇴진 등 정치적 요구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이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무슨 관련이 있으며, 엄청난 국민생활 불편 및 막대한 국민경제 손실 초래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한 것인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또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외국인 조종사의 신규 채용 금지.단계적 축소와 어제막 파업을 시작한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요구하는 인사위원회의 노사 동수 구성.퇴직금 누진제 유지 등은 경영권 침범이기 때문에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인력 채용과 급여 결정은 피고용자의 능력과 연공에 따라 경영자가 판단할 사안이므로 외국인 조종사의 채용과 급여 문제는 노조의 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된다. 조종사들이 이로 인한 구조조정과 감원을 우려한다면, 정작 구조조정을 두려워해야 할 곳은 그들처럼 연봉이 억원대인 고임금 전문 기술자들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들일 것이다.

퇴직금 제도 역시 경영권의 영역이다. 사기업은 물론 공기업들도 공공 개혁 차원에서 누진제를 폐지했는데 병원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더불어 연관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효성 울산공장 노조의 파업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시작된 일부 조합원의 전환 배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든지, 법정관리 및 워크아웃 상태에 있는 통일중공업과 고합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구조조정을 반대하면서 파업을 하는 등 극심한 도덕적 해이가 속출하고 있는 데는 어이가 없다.

대우차 노조가 'GM 인수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이라든지, 금융 지주회사에 편입된 일부 자회사 은행 노조가 독자 생존을 모색하는 것 등도 이러한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민주노총 등 노조 집행부가 이렇게 "국민이야 희생하든 말든 나만 살고 보자"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조의 조직률도 10%대로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평일 시민들이 퇴근하는 시각에 8차로 도로 중 4차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이는 노조의 명분이 어디 있는가. 이런 식의 노동운동은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고 노조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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