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 안이한 위기대처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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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악의 가뭄과 노동계 연대 파업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보면서 정부는 무엇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의 역할은 모든 위기 가능성에 대비, 미리 대책을 세워 국민의 피해와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번 가뭄과 파업의 경우 정부의 현실인식이 너무 안이했고, 그 대응 역시 소극적 뒷북행정에 그쳐 국민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의 12일 연대 파업은 오래 전 예고된 일이었고, 그 핵심은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에 있다는 것도 일찌감치 드러난 사실이었다.

민간기업의 노사문제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항공대란' 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생활과 수출활동, 외국인 입출국 등에 치명적 피해를 줄 사안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예방에 최선을 다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 파업과 관련해서는 관계부처 장관들이 대책회의도 제대로 갖지 않았다니 도대체 정부는 무엇하는 곳인지 알 수 없다. 민주노총 연대 파업도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된 일이었지만 총리 주재의 노동관계 장관 회의가 파업 하루 전인 11일에야 처음 열렸으니 정부의 위기인식 능력이 얼마나 안이한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가뭄대책도 마찬가지다. 가뭄은 천재(天災)로 파업보다 더욱 대응이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특히 4월부터 비가 안오면서 올 가뭄의 심각성은 일찌감치 예고됐었다.

그렇다면 미리 상습 가뭄 지역의 저수지와 양수기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양수기의 긴급 조달 방안에 대한 비상대책을 강구해 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총리 주재 관계장관회의가 가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난 이달 5일에야 처음 열렸고, 범정부 차원의 가뭄극복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대통령 지시를 받은 13일이었으니 정부가 얼마나 사태의 심각성에 무관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뒤늦게 내놓은 대책도 양수기를 보낸다, 물을 보낸다 등 1994년 가뭄 때와 거의 비슷한 레퍼토리뿐이다. 그나마 언론기관의 성금모금이나 군.민의 자발적 협조가 없었다면 정부는 가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정부의 위기 예방.관리 능력의 취약성을 경험했다. 앞으로도 이런 국가적 위기상황은 되풀이될 것이다.

특히 가뭄은 연속발생 가능성이 크다. 가뭄이 없어도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물이 연 1억t, 2011년에는 18억t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중소규모 댐 12개를 만들겠다지만 건설에는 4~10년이 걸리는데다, 아직 입지도 결정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가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환경단체의 반발은 더욱 심해질 게 뻔하다. 이런 모든 상황을 미리 예상, 건설교통부.농림부 등 해당 부서는 물론 총리실은 보다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임기 말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범 가뭄과 파업에 정부가 적극 대처하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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