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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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7. 백광

7일장을 지내던 중에 들은 말 가운데 원체 황당한 내용이라 긴가민가하며 흘려넘기고 말았던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방광(放光)이다. 은은하고 밝은 빛의 기운이 드러나는 현상을 말한다.

방광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성철스님이 입적한 그날 저녁 해질 무렵이었다고 한다. 나는 장례를 준비하느라 바빠 보지 못했는데, 몇 스님이 "퇴설당에 불났다" 고 소리를 질러 근처에 있던 스님들이 허겁지겁 물통을 들고 달려갔다고 한다. 퇴설당은 성철스님이 생전에 머물던 곳인 동시에 사후 스님의 주검을 안치했던 곳이다.

물론 불은 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일부에선 "장경각(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에서 밝은 빛이 나오는 것을 봤다" 는 얘기도 했다. 장경각과 퇴설당은 해인사 경내 가장 높은 쪽에 나란히 있는 건물이다.

보지 않고는 믿기 힘든 일이다. 장례를 마치고 사리친견법회를 시작하는 날 아침이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그동안 대사를 치르는 데 심혈을 아끼지 않으셨던 산내 큰스님들을 찾아 인사를 하던 중 유나(維那.사찰의 기율을 관장하는 소임)인 성본스님께 들렀을 때다. 차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느닷없이 밖에서 "방광이다. 백련암 쪽이다" 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내달아 백련암쪽을 쳐다보았다. 아침 8시 전후쯤으로 기억된다. 밝은 오렌지색의, 구름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빛이 백련암 뒷산을 휘감고 있었다. 산등성이 위로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간 다시 피어오르기를 20여분간 반복하다가 빛이 서서히 엷어지며 사라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본사 마당에서 볼 때 백련암이 동쪽이기에 아침해가 떠오르는 순간에 노을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간 보아온 아침 노을보다 훨씬 밝았고, 또 확실히 노을과 다른 것은 붉은 기운이 아래위로 여러 차례 움직였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방광을 목격한 사람은 해인사 스님들만이 아니다. 당시 국립공원 소장으로 근무했던 분이 들려준 얘기다.

"성철스님의 입적 직후 가야면에서 누가 해인사에 불 났다고 신고를 해왔어요. 확인해 보니 불이 난 것은 아니고, 그쪽에서 밝은 빛이 비쳤다고 하더군요. "

가야면은 해인사에서 20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산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명진스님도 당시 길상암(해인사 입구 암자)에 머물면서 방광을 여러번 보았다고 나에게 말하곤 했었다.

절집에서 방광이란 흔히 부처님의 탱화나 석불 등에서 목격되는 신비스러운 일로 구전돼왔다. 성철스님도 생전에 여러번 방광 이야기를 했다. 스님은 지금은 원로가 된 한 스님에 대해 얘기할 때면 언제나 "그 스님이 출가한 거, 방광 때문 아이가.

그 스님이 어느 절에 들렀다가 후불탱화 부처님이 갑자기 방광하시는 모습을 보고 발심해 통도사로 출가했다 안카나" 라는 말씀을 빠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방광의 의미에 대해 "지금도 부처님이 안 계신 곳이 없다는 거 아이겠나"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방광을 직접 보지 못하고 전해 듣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허무맹랑한 소리" 라고 일축해버린다. 심지어 일부 스님들은 상좌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오히려 불쾌해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잡고 옳으니 그르니 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안다.

누구에게 방광을 믿으라고 강요하려고 한 얘기는 아니다. 다만 "누구나 깨치면 무한한 능력이 있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된다" 던 성철스님의 생전 가르침을 되새기게한 이색체험이라 긴 얘기 가운데 빠트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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