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단호 침범 속앓이] 또? 할말 잃은 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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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북한 상선의 영해 및 북방한계선(NLL) 침범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난 4일 영해를 침범했다가 북상 중인 북한 선박(대홍단호)이 NLL을 침범하는 사태가 6일 벌어지자 군은 당황하고 있다.

◇ NLL 통과 방관〓대홍단호는 6일 오후 1시쯤 독도 북방 40마일 공해를 지나쳐 우리 군을 안심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방향을 북서로 돌려 이 항로로 그대로 가면 동해 NLL을 통과할 수 있어 우리 군은 긴장했다. 결국 대홍단호는 동해 NLL(휴전선 동해안 끝부터 2백마일)에서 1백45마일 해점을 지났다.

이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동해 NLL이 너무 길어 사실상 감시.감독을 할 수 없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북한 상선들이 NLL을 가로질러 통과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문제 삼지 않았다" 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합참 관계자는 "군이 왜 작전을 하고 싶지 않았겠느냐" 면서 "정부 방침이 북한의 NLL 통과를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작전을 펼 수 없었던 것" 이라고 토로했다.

◇ 허술한 동해 NLL〓백령도.소청도 등 도서가 밀집돼 있고, 군사대치가 첨예한 데다 남북한 선박 왕래가 빈발해 집중 관리되는 서해 NLL과 달리 동해 NLL은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는 게 군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합참 관계자는 "동해 NLL은 너무 길어 해군.해경 선박을 상주시켜 북한 배들의 남하를 막기에는 우리의 전력이 너무 모자란다" 고 말했다.

레이더 탐지 거리인 30마일을 기준으로 군선박을 배치한다면 최소 7척이, 예비선박까지 고려하면 30척은 확보돼야 하는데 우리 해군에 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 북한, 회담 테이블에 나올까〓북한은 이번 사태를 다루기 위해 우리측이 6일 판문점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회의를 열자는 제의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당분간 '대화를 통한 해결' 에 나설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3월 이후 중단된 남북당국간 대화가 재개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임동원(林東源)통일장관이 지난 4일 김용순(金容淳)아태평화위원장에게 해운합의서 체결 등 사태 해결을 논의하자는 전통문을 보냈지만 북측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간 비공개 막후채널이 이미 지난 3일부터 가동에 들어갔다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어 6.15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계기로 분위기가 새롭게 바뀔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안성규.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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