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총선 영국 "색깔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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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제 대처리즘의 유산을 청산할 때가 됐다. "

토니 블레어 총리는 5일 유세에서 이번 선거는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영국정치를 휩쓸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정치적 이념의 잔재에서 벗어나는 역사적 계기가 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의 말처럼 오는 7일 실시되는 영국의 총선은 보수와 개혁,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등의 대립적 이념논쟁으로 이어졌던 과거의 정치풍토가 사라진 가운데 선거전이 치러지고 있다.

각 여론조사에서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노동당은 '사회정의' 나 '복지' 등의 전통적 구호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소득세를 올리지 않겠다" "개인들의 경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 등의 보수당식 선거 공약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다.

정치와 축구를 안주 삼는 영국의 전통주점 펍에서도 노동당.보수당의 이념적 성향을 둘러싼 논쟁은 좀처럼 들리지 않고 있으며, 전통적 보수언론조차 더 이상 노동당의 '색깔' 에 시비를 걸지 않고 있다.

보수당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노동당이 세금을 늘려 공공부문 지출을 늘리는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속내에 감추고 자유주의 경제이념으로 겉모습을 위장하고 있다며 이념 논쟁의 불을 댕기려는 시도를 해왔다.

심지어 대처 전 총리가 선거유세에 가세해 노동당이 단일 유럽통화(유로)정책을 도입하려는 것은 영국의 주권을 이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하며 선거판을 거대정책의 대결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기관 'ICM' 의 조사에서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의료.범죄.교육 등 실생활과 밀착된 부분이었으며 보수당이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정부규모 축소나 유로화 가입문제는 '유권자 10대 관심사' 에서 벗어났다.

유럽연합(EU)과 영국과의 관계, 조세정책 등 이념성 짙은 논쟁을 유발해 전통적 보수층의 표를 확보하려는 보수당의 선거전략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런던 정경대 마거릿 스카멜(정치학)교수는 이에 대해 "노동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에 기초한 복지위주의 정책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노동당과 보수당의 이념적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 여기에 기업과 부유층들이 블레어 총리가 자신들의 기대에 반하는 정책을 갑자기 펴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 보수당의 입지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고 설명했다.

런던=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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