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2 영국 양당체제 깨질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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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총선을 이틀 앞둔 5일 영국 런던 시내의 도박 중개회사 '래드브룩스' 의 영업소에는 5일 "선거와 관련한 '베팅' 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 는 공고문이 나붙었다. 일부 영업소에서는 도박꾼들이 이미 노동당에 돈을 건 손님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며 웅성거렸다.

전통적 보수지 더 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노동당은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표를 얻을 자격이 있다" 며 공식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 영국의 보수층에 충격을 가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영국 집권 노동당이 '정권 확대 재창출' 이라는 대성공을 거둘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날 언론사들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47~50%, 보수당은 26~30%의 지지율을 보였다. 보수당이 선거를 코 앞에 둔 여론조사에서 20% 가량 노동당에 뒤진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기초로 언론들이 추정한 예상 의석 분포에서도 노동당은 현재의 4백19석(전체 6백59석)에서 최대 수십석을 더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수당은 현재의 1백61석에서 1백50석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판세가 확연히 기울자 보수당은 "노동당이 '압도적 승리' 를 하는 것은 국가적 비극" 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노동당 지지자들은 보수당이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 수준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다.

자유민주당이 창당 이래 최대의 인기를 얻고 있어 현재의 47석보다 의석수를 상당수 늘리며 득표율면에서 보수당에 크게 뒤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들섹스대 앤드루 하워드(정치학)교수는 "이같은 예상들이 적중한다면 1920년대에 노동당이 출범, 보수당과 노동당이 엇비슷한 세력을 유지해온 영국 의회의 전통이 허물어지게 되며 사실상 양당 체제가 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고 해석했다.

"한 정당이 지나치게 큰 힘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말하는 데이비드 호프 요크 대주교처럼 노동당의 압승으로 여야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난 번 선거에서 보수당편에 섰던 주요 언론들마저 노동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재무장관까지 지냈던 보수당의 주요 정치인인 앤서니 넬슨이 노동당으로 당적을 바꾸는 등 보수당에는 점점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이 대선전을 하고 있는 것은 교육투자 확대, 의료시스템 개혁, 치안확립 등 민생분야에 대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제시한 반면 보수당은 유권자들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 강화, 유로화가입 저지 등을 앞장 세운 것이 주요 감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워드 교수는 "수년째 호황을 누리자 세금감면이라는 보수당의 전통적 선거 이슈가 먹혀들지 않고 있으며, 노동당이 경제면에선 무능하다는 중산층들의 편견도 대부분 사라졌다" 고 말했다.

런던〓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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