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단소송제, 세과시로 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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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와 재계가 이번에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공동으로 기업인 2만명을 목표로 반대 서명운동을 하겠다고 밝힌 반면 진념(陳稔)부총리는 4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 이라며 도입 의지를 재확인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집단소송제 및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해 지금까지 1만7천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집단소송제 문제가 이런 식의 세 과시나 기 싸움 형태로 전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 제도의 목적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건전성 확보와 경쟁력 강화에 있다. 30대 그룹 지정 등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로 손발을 묶어놓고는 투명성에서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재계 불만도 일리는 있다.

또 오너의 전횡을 막고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며, 자본금 2조원 이상 상장사의 허위 공시.분식 회계.부실 감사에 한해 적용하겠다는데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정부.시민단체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제도가 기업 경영은 물론 나라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이 문제는 서명운동이나 밀어붙이기 차원이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는 더욱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정부와 재계는 지난달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 출자총액 한도 예외 인정 등의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번에도 머리를 맞대고 현 시점에서 제도 도입이 우리 실정에 맞는지, 또 이를 위해서는 어떤 여건 정비가 선행돼야 하는지 등을 집중 분석해야 한다.

우리는 집단소송제 도입 추진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어디까지나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해답은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잡다한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이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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