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유용주 '구멍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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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나 많은

손들이 들락거렸던가

(결국 늙은 염쟁이까지 끌어들이는군)

생선 썩는 냄새도 피고름도

말라버린 정액도

그 언덕에선 이제 고즈넉하고

억새인가

갈대겠지

대여섯 올 성긴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적막만이

폐허가 그 주인인

어머니,

제가 정말 그곳에서 나오긴 나왔나요

유용주(1960~ )의 '구멍 1'

아니, 이런 천륜도 모르는 후레아들 놈이 있나, 하고 격분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죽은 어머니의 성기를 시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사실만 놓고 본다면 이 시는 엽기, 그 자체다. 1연의 비아냥거리는 어조, 2연의 노골적 묘사, 3연의 자조 섞인 엉뚱한 물음. 어느 문장 하나 얌전한 대목이 없다.

또 제목은 뒷골목 은어로나 쓰일 법한 언사가 아닌가. 하지만 시는 말할 수 없는 것, 말하기를 꺼리는 것을 끝끝내 말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생의 감춰진 이면을 뒤집어 보여준다. 구멍이란, 세계와 나를 연결해 주는 통로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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