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조훈현 "요즘만 같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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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조훈현9단이 왕위전에서도 4전 전승으로 훨훨 날고 있다. 마라톤으로 치면 막 반환점을 돈 상태지만 최근 조9단이 보이고 있는 절정의 컨디션을 감안할 때 그의 도전권 쟁취가 매우 유력해 보인다. 나이를 먹으며 오히려 바둑의 숨은 비밀을 깨닫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요즘 두면 이기고 그것도 거의 불계승이다.

현재까지의 전적은 22승6패.

6패 중 5판을 이창호9단에게 졌으니 그는 국내외를 통틀어 이창호 외엔 두려운 적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또 22승 중 17판이 불계승이어서 권투로 치면 KO율이 발군인 강펀치의 소유자임이 증명된다.

조9단은 올초 국수전에서 '철녀'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에게 지난해의 패배를 설욕하며 국수위를 되찾았고 아시아TV바둑선수권전에서 우승해 2년 연속 세계 속기 챔피언이 됐다.

메이저 세계대회에서도 조9단은 이창호9단이 부진한 틈을 훌륭히 메웠다. 후지쓰배 세계대회에선 8강에 올라 있고 춘란배 세계대회에선 준결승에 올라 25일 중국 시안(西安)에서 유창혁9단과 함께 왕리청(王立誠)9단, 왕레이(王磊)8단과 대결한다.

바둑계는 이창호9단과 이세돌3단의 대결에 이목을 집중해 왔지만 요즘 그 뒤안길에서 실질적으로 한국 바둑을 지키는 인물은 만 48세의 조훈현9단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9단은 '훈련교관' 이라고도 불린다. 한국 바둑을 훈련시켜 세계를 제패케 한 공로자라는 점을 뜻하는 말인데 요즘에도 그는 막강한 한국의 신예기사들을 상대로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왕위전만 해도 그는 전적표에서 보듯 '신예 트로이카' 의 최철한3단, 올해 연승행진을 보여준 안영길4단, LG배 본선에 오르며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박정상초단 등 4명의 신예들을 모두 불계로 꺾어버렸다. 정상으로 가고 싶은 자는 나를 꺾으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조9단에게 요즘 '화염방사기' 란 별명이 추가됐다. 그렇지않아도 격렬한 조9단이 기풍을 더욱 사납게 바꿔 끝없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마치 화염방사기가 불을 뿜는 것 같다고 해 붙은 별명인데 그는 이같은 최강의 적극전법으로 승률을 크게 높이고 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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