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보실정 실무자만의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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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감사원이 의보재정 위기의 발생원인을 조사한 결과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보건복지부 실무자들이 국민 불편과 재정 부담 가중 등의 부작용을 간과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정책수립의 기초라 할 통계나 분석자료도 충실히 준비되지 않았고, 의보수가를 지나치게 인상해 재정 파탄을 초래했는 데도 복지부 일부 담당자들은 문제없다는 식의 보고를 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정책 추진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친 공무원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민주당과 청와대 등이 다른 부처의 인력을 대거 복지부에 충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복지부 관리들은 의보재정 파탄의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무능하다는 평가마저 감수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를 마치 의약분업 실시 전과정에서 드러난 모든 문제의 책임까지 몽땅 복지부 실무자에게 떠넘기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된다. 의약분업 시행은 여당의 대선 공약이었고, 민주당 내 개혁론자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실무자들이 안된다고 버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8월 의약분업 시행을 전후해 청와대와 민주당 일각에서는 의약분업 시행의 준비 부족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반(反)개혁론자로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지 않았던가.

감사원 특감은 정책 결정권자들의 잘못을 규명하려는 게 아니라 정책 실무자의 책임을 가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한계가 분명한 감사였다. 따라서 "복지부는 물론 청와대와 민주당, 시민단체와 의사협회.약사회 등이 공동책임을 져야 할 문제인데, 복지부 실무자만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는 복지부 관계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왕에 의보 실정(失政)과 관련, 실무자의 잘못을 밝혔으니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이나 당정의 공동조사단 구성 등을 통해 정책 결정과정의 문제점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실패연구를 철저히 해 다시는 의보재정 파탄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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