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배아복제연구 허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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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배아 복제를 엄격히 제한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시안이 논란을 빚고 있다. 쟁점 사안은 차세대 생명공학의 핵심 기술이랄 수 있는 핵 이식 체세포 복제 연구의 전면 금지다.

배아도 엄연한 생명체며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주장이 대폭 반영된 결과다. 이번 시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는 독일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법률로 배아 복제 연구를 금지한 국가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시안에 대해 몇가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장기가 부족해 생명을 잃어야 하는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핵 이식 체세포 복제 기술은 거부반응이 없는 장기를 무한정 생산해낼 수 있는 신기술이기 때문이다.

둘째, 배아 복제 기술은 국내 연구진이 전세계 과학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몇 안되는 분야다. 이미 서울대 황우석 교수 등 국내 연구진은 장기 대량 생산의 전초 단계인 줄기세포의 배양까지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시안으로 이제 막 꽃 피우기 시작한 국내 생명공학 열기가 한순간에 식게 될 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영국의 발빠른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은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상원에서 핵 이식 체세포 복제 연구 허용 법안이 통과돼 사상 최초로 배아 복제 연구를 허용한 국가가 됐다.

여기엔 1997년 복제양 돌리 연구에서 잡은 주도권을 살려 차세대 생명공학분야에서도 국가적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도 난치병 치료 목적의 배아 복제 연구는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배아 복제 연구는 윤리적 당위성을 내세우기엔 너무도 절박한 과제다. 우리가 엄격한 생명윤리를 내세워 연구를 제한하는 사이 선진국에선 핵심 기술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첨단과학의 열매는 씨를 뿌린 자만 거둘 수 있다.

핵 이식 체세포 복제 기술은 결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만드는 개체 복제가 아니다. 이 기술로 수많은 난치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한다면 이야말로 생명 존중의 숭고한 의학적 기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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