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초학문 위기 방치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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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대학교 인문.사회.자연대 등 3개 단과대 교수들이 정부와 대학측의 정책이 기초학문을 홀대하고 있다며 금명간 이에 반발하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로 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기초학문 경시 풍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나 국립 서울대 교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교수들이 집단행동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총장의 학교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 등 학내 문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위기 의식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미여서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사회의 기초학문 경시 풍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0~70년대엔 국가 개발 논리에 밀렸고 최근 들어선 정보화.세계화 바람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첨단 분야 등에 필요한 고급 인력들을 많이 키워내는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이 분야 연구 등에 대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 역시 바람직하고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민간 기업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기초학문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은 보잘 것이 없다. 인문학 부문만 보더라도 올해 정부의 학술연구비 지원은 4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0억원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전체 지원액(1천3백억원)의 3%에 불과한 수준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본격 추진해 온 대학 신입생의 학부 단위 선발도 기초학문 위기를 가중시켰다. 교육 당국은 백화점식 학과 운영의 폐해를 막고 공급자 위주 교육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며 학부제 운영을 적극 권장해 왔다. 물론 학부제도 나름대로 장점들이 있는 만큼 이를 탓할 일은 못된다.

특히 학과 중심 대학 운영으로 학과간에 칸막이가 생기고 서로 편을 가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부작용이나 학교 실정 등을 외면한 채 당근을 내걸어 대부분 대학이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부채질한 것은 잘못이다. 그 결과 일부 지방대의 경우 기초학문 분야 학과에는 지원자가 전혀 없어 폐과 위기에 몰려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초학문 분야 교수들 사이에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다. 지난달의 '서울대 교직원 수첩 사건' 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본부가 새로 나눠준 학교 기구표에 옛 문리대 소속인 인문대.사회대.자연대를 앞세우던 관행을 깨고 '가나다' 순으로 나열했고, 급기야 이들 3개대 학장이 한달째 학장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기초학문 연구자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데 대한 반발일 것이다.

기초학문의 발전 없이는 대학이나 사회는 물론 과학기술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실용학문이나 첨단 공학 등도 기초 학문의 토대없이 존립할 수 없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고사(枯死)위기에 처한 기초학문을 살리기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각 대학들도 유사 학과를 통폐합한다든가, 연구 프로그램을 제휴함으로써 설 자리를 넓히는 자구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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