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이지스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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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묘코' 승무원의 정보수집 활동과 우리에 대한 정보제공에 감사한다. " 재작년 3월 일본을 방문한 미 해군 고위간부가 일본 해상자위대에 감사장 한통을 전달했다.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1호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일본의 이지스함 '묘코' 가 미사일의 궤적을 정확히 추적해 미국에 통보해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 당시 미국은 첩보위성으로 북한의 미사일발사를 포착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위성을 쏘아올리는 장면은 미처 잡아내지 못했다. 일본의 이지스함만이 이 일을 해낸 것이다.

'이지스(aegis)' 는 그리스신화의 최고신 제우스가 딸 아테나에게 선물한 '무적의 방패' 를 말한다. 전쟁과 기예(技藝).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는 고대벽화 같은 데서는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로 완전무장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가 든 둥근 방패가 바로 이지스로, 모든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영험있는 방패로 불린다. 사정거리나 궤도가 제각각인 열개 이상의 미사일을 동시에 포착하고 배에 닿기 전에 거뜬히 제거하는 이지스함의 위력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93년 '콩고' 를 처음 취역시킨 이래 '기리시마' '묘코' '초카이' 등 3대를 더 확보해 총4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부터 2005년까지로 예정된 일본의 '중기 방위력조정계획' 에 따라 성능이 훨씬 향상된 이지스함 2척을 더 갖게 될 예정이다.

미국은 2차대전 때 일본의 가미카제 공격에 혼난 경험을 되살려 세계최초로 이지스함 개발에 나섰다는 설이 있다. 동시다발로 날아드는 '인간폭탄' 에 마땅한 대응책이 없었다는 교훈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동기는 67년 이스라엘 구축함 '에이라트' 호가 이집트 군함이 발사한 대함(對艦)미사일에 맞아 맥없이 침몰했을 때 받은 충격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항공모함으로 중무장한 미 해군은 대함미사일 위주의 옛소련 해.공군을 대단치 않게 여겼다. '에이라트 쇼크' 이후 새로운 방공시스템 연구에 박차를 가한 결과 83년 1월 22일에는 최초의 이지스함 '타이콘데로가' 호가 세상에 등장했다.

엄청난 위력 때문에 이지스함은 그 자체가 정치.외교적 상징물로 통한다. 미국이 이지스함 두 척의 동해 배치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그래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북정책이 점차 험난한 고빗길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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