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클리닉] 의사·과학자 … 구체적 목표가 공부 원동력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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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학생을 만나면 첫 번째로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고 묻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의사, 과학자, 변호사 등 구체적 목표를 얘기하는 학생들이 점차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묘한 직업군이 등장했다. “그냥 편한 거요” “돈 많이 버는 거요” “TV에 나오는 스타요” 등. 그러나 더 심각한 대답은 “몰라요”다.

3년 전 만난 고1 상윤이도 “글쎄요… 진짜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했다. 엄마가 “너 중1 때 드라마 보면서 흉부외과 의사가 되겠다고 그랬잖아?”라고 채근하자 상윤이는 “나 피 보기 싫더든” 하고 고개를 돌렸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 전교 8등이었던 상윤이의 성적은 졸업할 때 중위권으로 떨어져 있었다. 성적이 떨어져 꿈을 접은 걸까? 아니면 꿈을 접어 성적이 떨어진 걸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가리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지능, 정서, 흥미, 성격, 적성, 가치관 등을 검사해 이를 바탕으로 ‘학습동기촉진기술 평가’를 했다. 결과는 100점 만점에 23점. 꿈이라는 날개를 접으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친 것이 확실했다. 상윤이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대학엔 왜 가야 하는지, 공부가 자기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 동기를 높이는 과정은 ‘동기 각성→목표 설정→흥미 계발→자신감 갖기’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핵심은 목표 설정이다. 상윤이는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K대 생명공학부에 진학해 바이오벤처기업 CEO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세웠다. 전형요강 등 K대 입학에 있어 필요조건 조사, 필요조건과 자기의 현재 위치 비교, 구체적인 학습목표 설정과 노력, 목표 달성 여부 점검, 계획 수정 및 재계획 수립….

당시엔 진학 목표에 비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해 단계적인 성적 향상 목표를 세웠다. 일단 어려운 과목보다 좋아하는 과목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기 목표로 중상위권 친구를 선의의 경쟁자로 삼았다. 6개월 후 2차 검사에서 성윤이의 학습동기촉진기술 점수는 75점으로 상승했다. 성적도 비례해 올라갔다. 그러길 3년, 올해 상윤이는 목표했던 바로 그 대학 그 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삶의 목표와 공부 동기가 생기면 자기주도학습은 저절로 이뤄진다. 자식이 공부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그러나 코앞의 결과물, 즉 성적에만 매달려 학원·과외로 아이를 내몰고 성실하지 못하다며 언쟁하다 보면 아이는 이내 꿈이란 날개를 접어버리고 만다. 내 아이에게 맞는 목표의식과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공부에 관한 최고의 유산을 남겨주는 것임을 잊지 말자.

정찬호 마음누리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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