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으로서의 해체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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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도 해체론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게 왜 해체론이겠어. 다 부수고 말자는 거니까 해체론이겠지. 진리도, 본질이나 토대 같은 것도 없다는 게 해체론 아냐. 휴머니즘도 끝났고 역사도 끝났다는 그런 허무주의 타령이잖아.

그러나 아니다. 해체론이 끝났다고 할 때는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다 실현되고, 일상화되고, 지겹도록 되풀이되어서 다시 들여다보기도 싫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한국사회에서 유가(儒家)사상은 일상화한 동시에 진부해졌다. 신선한 의미를 잃어버렸고, 그런 뜻에서 끝난 사상이다. 유가사상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습관을 조형해온 최고의 형식이지만 한국사회에 새로운 정신적 추동력이 유입되는 것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인의 본성에 내면화된 지 오래여서 그 장애의 무게가 무감각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때문에 한국인은 공자(孔子)를 죽여야 한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이고 살려야 한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논쟁 자체가 헛도는 일상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신선한 의미를 구해야 하는가? 새 것은 오래된 것에 있다. 옛것을 부수어 새 것을 얻자. 이렇게 말할 때 해체론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믿는 지독한 문헌학자이다.

그러나 해체론자가 해체론자인 것은, 첫째 온고지신 자체의 의미를 묻기 때문이다. 옛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이란 무엇인가? 온고란 무엇이고 지신이란 무엇인가□ 가령 유가적 전통에서 가르쳐온 방법과 전제 안에서만 온고지신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온고지신해도 끝장난 유가사상은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유가적 편견을 벗어날 때만 공자 말씀에 대한 온고지신이 가능한 것이다. 해체론은 서양사상사의 주류인 플라톤주의적 전통을 서양적 편견 없이 온고지신하는 방법을 역설한다.

해체론자가 해체론자인 둘째 이유는 아무리 해체하거나 분해.조립해도 잉여로 남는 것, 어떤 해체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믿음에 있다. 역설적이고 모순적이어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것, 즉 어떤 초월적 사태가 있다. 그것이 전통적 의미의 진리보다 더 오래된 진리이자 철학이 말해온 토대보다 더 심층적인 토대이다.

그밖에도 해체론자의 변별적 특징은 많다. 해체론자들은 일반적으로 문학.예술.종교.정치.인류학.정신분석 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을 철학적 담론과 구분하지 않거나 혼합한다.

적어도 서구에서 인문학의 전반적 추세는 해체론이 예시한 길을 따르고 있다. 시대, 영역 및 지역을 나누던 경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하나의 담론을 문화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새로운 인문학적 시각을 확립하는 데 해체론의 공로는 컸다.

게다가 서양사상사를 탈서양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해체론은 그 어떤 서구의 사조보다 동양적 사유의 온고지신을 자극하고 있다.

김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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