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개혁 정비론] "DJ=개혁 깨려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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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혁 정비론' 이 여권 내에 파장을 던지고 있다.

민심 수습 방안을 짜내기 위한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워크숍(7일)에서 본격 제기된 '개혁 정비론' 은 "지금까지 벌여온 개혁 정책에 우선순위.경중(輕重)을 다시 매겨 임기 내 마무리가 가능한 것에만 집중하자" 는 것이다. 개혁 정비론은 집권 후반기에 들어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정관리 이미지.통치 스타일과 연관된 사안인 만큼 그 파장이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었다.

8일 청와대가 개혁 정비론을 개혁을 효율적으로 추진하자는 방법론으로 유연하게 해석하면서도 '개혁 지속론' 을 앞세운 것은 그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개혁은 金대통령의 통치철학인 만큼 이 문제가 논란거리가 되면 국정기조 전반이 헝클어진다" 고 지적했다.

조순형(趙舜衡)의원은 "개혁을 마무리하자는 것은 DJ 정부의 정체성(正體性)을 거두라는 것" 이라고 반발했고, 자신이 개혁성향임을 밝히는 일부 의원도 그런 주장을 폈다. 특히 "차기 대선주자 선정 때 '개혁 정책의 승계' 를 金대통령이 내세울 것인 만큼 개혁 정비론을 차단할 수밖에 없다" 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최근 "차기 지도자는 민주.인권국가를 만드는 데 철저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1일 불교방송 인터뷰)며 자신의 '개혁 이념' 계승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여기에는 개혁 정비론이 金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변화를 요구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하는 의도도 있다.

정대철(鄭大哲)최고위원은 워크숍에서 "대통령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고 대통령만 쳐다보는 시스템으로는 민심 수습이 어렵다" 고 주장했다.

고위 당직자는 "개혁 정비론은 개혁정책의 주요 부분만 대통령이 다뤄야 한다는 청와대 권한 분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 경계했다. 이미 차기 주자들 사이에선 이런 민감한 문제를 '대통령-총재 분리론' 형식으로 조금씩 다루고 있다.

개혁 정비론은 현 정부가 주요 정책을 펼 때마다 기대온 '시민단체 원군(援軍)논쟁' 과 연결돼 있다. 정장선(鄭長善).이종걸(李鍾杰)의원은 "그동안 개혁 추진과정에서 시민단체 쪽으로 너무 기울었다는 자체 반성이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고 말했다.

개혁 정비론은 청와대의 제동으로 수그러들고 있다. 그러나 "민심 현장에는 의약분업.교육개혁을 놓고 개혁 피로감이 느껴진다" 는 게 상당수 의원의 주장이다. 때문에 "의약분업.교육개혁의 보완 대책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개혁 정비론이 다시 등장할 것" 이라는 전망이 당내에 퍼지고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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