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성공회 부산교부 민병옥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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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나라 성공회에서 여자를 사제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것은 1970년대 후반입니다. 여성 사제가 태어나는 데 2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영광의 자리를 받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

성공회가 전래된 지 1백11년 만에 처음으로 탄생한 여성 사제인 민병옥(閔炳玉.55.카타리나)신부는 스스로를 '매우 평범한 사람' 으로 표현했다. 그저 "하느님께 평생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교회활동을 해온 것이 전부" 란다.

閔신부가 자부하는 오직 하나, '평생 하느님께' 라는 믿음은 어려서부터 죽음의 그림자와 직면해야 했던 병약함에서 비롯됐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閔신부는 건강한 몸을 위해 장로회 소속 교회에 다니며 열심히 기도를 했고, 덕분에 몸이 나아지자 '하느님께 바치는 삶' 을 약속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성공회 성당(전주교회) 미사에 참석해 '프로테스탄트이면서도 가톨릭의 장중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성공회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는 것이다.

마침 당시 성공회 내에서 여성 사제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우선 신학원에 여학생 입학을 허용해 보자" 는 결론이 내려졌다.

閔씨는 76년 성공회대의 전신인 성 미카엘 신학원에 입학, 최초의 여학생이 됐다.

"졸업 이후 지금까지 23년간 전도사로 일해 왔습니다. 사제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하느님과의 약속에 따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이제 제가 길을 텄으니까 여자 후배들이 많이 뒤따를 거예요. "

閔씨는 부산교구에서 성공회 여성신자 모임인 '어머니연합회' 의 간사로 여성관계 활동을 맡아 왔다. 여성신자들에게 교리와 기본적인 교양교육을 하고, 다시 그들을 데리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온 20년이다. 그 사이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올라가고, 여성을 보는 사회와 교회 내의 눈길도 바뀌었다.

덕분에 閔씨는 일단 사제 후보자격을 주는 '성직고시' 를 통과할 수 있었고, 지난달 25일 정식으로 이대용(李大鏞)주교에게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영국 성공회의 경우 19세기 말부터 여성사제를 인정해왔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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