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비틀스 2세의 '창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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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59)는 엄청난 부자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22일 그가 영국 팝계 인사 중 가장 많은 7억1천3백만파운드(1조3천5백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그토록 원하던 미술 공부도 포기해야 했던 그가 이제는 대중적 인기와 돈, 그리고 명예를 모두 움켜쥐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는 오로지 창의성 하나로 대중을 사로잡고 거대한 대중문화 산업에서 우뚝 섰다.

1998년 12월 인터넷 방송도 시작했다. 비틀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창조력은 한이 없어 보인다. 창의성에 바탕한 지식기반산업의 선두주자 격이다.

그에게는 자식 1남3녀가 있다. 98년 유방암으로 사망한 부인 린다와의 사이에 딸 메리(30)와 스텔라(29), 그리고 아들 제임스(24)를 낳았으며 린다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헤더(39)도 맡아 기르며 매카트니 성을 쓰게 했다. 그의 세 딸은 지식기반산업이라는 '가업' 을 잇고 있다.

의붓딸 헤더는 식기 등 가정용품을 디자인하는데 "영국에서 가장 창조적인 산업 디자이너" 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99년 봄 영국 통상산업부 주최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영국상품 전시회에 '국가 대표 디자이너' 로 초청받았을 정도다.

고대 멕시코 문명에서 영감을 얻어 고대와 현대의 이미지를 융합한 그의 작품들은 BBC방송으로부터 "21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창의적 산업 디자인" 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막내딸 스텔라는 유명 의류업체 클로에의 패션 디자이너다. 99년 말에는 영국 밀레니엄 위원회의 최연소 위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99년 10월에는 VH1/보그 패션상의 '올해의 디자이너' 부문에서 수상했다.

린다와 사이에 난 첫딸 메리는 사진작가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인 셰리가 늦둥이 아들 리오를 출산했을 때 총리 부부는 메리에게 아들의 첫 사진을 찍게 했다.

세 딸 모두가 창의성 있는 문화산업에 종사하면서 아버지와 치열한 성공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폴 매카트니는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했을 뿐" 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창의성이 생긴다" 는 메시지로 들린다.

이들의 성공담은 블레어 총리가 외치는 '창의적 영국' 이라는 국가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문화산업 등 지식기반 산업으로 승부하자는 전략이다.

영국에선 80년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자동차.조선.철강 등 제조업 분야의 수많은 업체가 사라졌다. 그들은 대신 지식기반 산업을 일궜다. 대표적 지식기반 산업인 문화산업에서만 국내총생산(GDP)의 16% 정도를 생산한다. 제조업(22% 정도)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지식기반산업은 일자리도 2백만개 이상을 제공했다.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은 이제 지식기반 산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 결과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변화를 준비하지 않고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자랑스런 과거만 회상하고 살았다면 이런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도 60~70년대의 고속 성장, 90년대 말의 정보화 혁명에 이어 지식기반 산업을 주도할 새로운 창의성 혁명에 나설 때다. 그리고 그 창의성 혁명은 교육은 물론 모든 분야에서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채인택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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