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그때 이 붉은 셔츠, 정작 돈 번 건 짝퉁 업체들이라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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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직후인 2002년 7월 내한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붉은 악마’ 티셔츠로 갈아입고 앙코르 곡을 연주한 뒤 청중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정품업체들은 붉은 악마 티셔츠의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중앙포토]

 경영학 콘서트
장영재 지음
비즈니스북스
376쪽, 1만3800원

경영학이 과학임을,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찬찬히 설명해 주는 경영교양서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 우주항공학과를 졸업하고 MIT에서 기계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가 언뜻 보면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수익경영’ ‘리틀의 법칙’ ‘채찍효과’ 등 낯선 용어들이 나오지만 음악회처럼 편안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2009년 5월 현재 대한항공의 ‘미국 워싱턴 DC-인천공항’ 직항노선의 비행기 요금은 ‘미국 워싱턴 DC-인천공항-마닐라’ 요금보다 비싸다. 왜 비행기를 한 번 더 타는 이들이 오히려 낮은 요금을 낼까. 워싱턴-인천 간 대한항공 노선은 다른 나라 비행기에 비해 한국인들에게 경쟁력이 있다. 기내 서비스 등이 한국인에게 편하기 때문에 요금이 다소 높아도 수요가 많다. 반면 인천-마닐라 노선은 바캉스 시즌이나 결혼시즌이 아닐 때는 승객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워싱턴에서 마닐라로 가는 환승승객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마닐라 행 승객들은 가격에 매력이 없다면 도쿄나 싱가포르를 경유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항공사 측으로선 워싱턴-인천 요금을 낮춰 마닐라 행 승객을 많이 유치하는 편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 비행기 좌석은 일단 뜨고 나면 상품가치가 사라지는 ‘소멸성 자산’이어서 빈자리로 운항하기보다는 헐값이라도 받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이유로 같은 노선 같은 급의 비행기 좌석에도 가격 차별화가 생긴다. 비행기 요금에 이런 요금 책정 방식이 가능한 것은 ‘수익경영’이론으로 설명되는데 수익경영이란 소비자가 부여하는 상품가치를 가격으로 책정해 소비자의 가치실현과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영방식이다.

10개의 테이블을 가진 보스턴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300명이 불평불만 없이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 ‘리틀의 법칙’도 눈여겨 볼 만하다. 식사 시간은 레스토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의 1/4에 불과하단 통계를 이용한 공간 활용 극대화 방식이 비결이다. 이 레스토랑은 손님들을 바로 테이블에 앉히는 대신 음식주문 줄과 음식 기다리는 줄에 세우고 음식을 받은 뒤에야 테이블로 가게 했다. 대신 다양한 메뉴를 고를 기회와 개방형 주방의 조리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하긴 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스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니 꽤 그럴 듯한 방식이다. 지은이는 이에 더해 ‘공간 내에 머무는 객체 수’는 ‘객체의 공간유입량’과 ‘객체가 머무는 시간’에 비례한다는 ‘리틀의 법칙’을 풀이하니 쏙 들어올 수밖에.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는데 이른바 ‘짜가’를 제조· 판매하는 업체들이 짭짤한 재미를 본 반면 정품을 생산하는 스포츠브랜드 업체들은 월드컵이 끝난 후 재고처리에 골머리를 싸맨 이유는 공급사슬망의 ‘채찍효과’ 탓이라 한다. 채찍의 손잡이 부분을 작게 흔들어도 끝 쪽으로 가면 큰 움직임이 생기는 것을 빗댄 이 효과는 수요 예측이 공급망 위로 갈수록 왜곡되는 현상과, 발주와 상품도착 간의 시차 때문에 생긴다. 월드컵 당시 정품 업체들은 소매점에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유령주문을 하는 통에 과잉생산하는 등 수요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반면 짜가 업체들은 공급망이 단순해 기민하게 시장 움직임에 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쓰는 데 2년이 걸렸다는 이 책은 기업으로선 감추고 싶거나 당장 도움이 될 내용이 적지 않고 소비자들로서도 궁금한 사항이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용카드 신청서에 수입을 적으라는 이유나 구글이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속내를 풀이한 것이 전자라면 없는 좌석도 예약을 받는 항공사의 행태나 미국 경제학 원서가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선 더 싼 까닭에 대한 설명은 후자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열심히 일할수록 문제가 커진다’ ‘유휴설비나 노는 직원들이 있다고 함부로 줄이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 등에 관한 설명에 더 솔깃하지 않을까. 그것도 상당히 설득력 있으니 말이다.

비록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한국인 학자가 『괴짜 경제학』이나 『경제학 콘서트』못지 않은, 흥미로우면서도 세상을 보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는 책을 썼다는 점에서 읽는 이들을 뿌듯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김성희 기자


미국 국채 폭락하고 오바마는 중도하차?

 달러가 사라진 세계
소에지마 다카히코 지음, 박선영 옮김
예문, 270쪽, 1만2500원

일본인을 위해, 일본의 시각에서 세계 경제를 전망했는데 흡사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을 듣는 듯 하다. 지금 세계 경제가 회복세에 있는 듯하지만 이는 허상일 뿐이라고 한다. 더 큰 위험을 잠시 은폐했을 뿐이란다. 이제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극심한 금융 붕괴가 미국을 덮칠 것이다. 미국 환율은 달러당 80엔에서 60엔까지 추락할 것이며, 뉴욕 다우지수도 6000선으로 붕괴할 것이란다.

그 신호탄이 미국 국채의 폭락이다. 그동안 너무 많이 찍어댄 것에 비해 살 사람은 나타나지 않으니 가격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99센트 정도인 지표 가격은 90센트로, 종국엔 80센트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수치까지 제시했다. 그 다음 예언이 더 충격적이다. 국민의 비난을 이기지 못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결국 중도 사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타자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지목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겐 기묘한 금융상품에 손대지 말고 실물자산, 특히 금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니케이지수가 5000선 밑으로 떨어질 2012년이 매입 시점이라고 했다.

미국에 대한 거침 없는 독설, 국제관계를 둘러싼 음모론 등을 보면 쑹훙빙이 쓴 『화폐전쟁』의 일본판을 읽는 듯 하다. 지난해 3월 이후 주요국의 주가가 동반 상승한 것도 경기회복과는 무관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선진7개국(G7) 국가들이 대형 금융기관의 손해를 덜어주기 위해 담합, 조작한 결과라는 것이다. 일본의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이 G7 회의장에서 ‘만취 회견’을 벌인 뒤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도 미국의 음모라고 했다. 앞서 “이제 더 이상 미국 국채를 사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나카가와가 한 술 더 떠 “IMF에 1000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밝히자 미국이 괘씸죄를 물었다는 것이다.

이런 좌충우돌 식 주장은 표현도 직설적이다. 미국 월가는 속국을 착취하는 ‘뉴욕의 금융유대인 일당’으로, 자국의 재무성 관료들은 ‘미국에 세뇌된 매국노’라고 칭했다. 저자는 이에 대한 비난을 어느 정도 의식한 듯 ‘겸손하라’는 충고는 받아들이겠지만 경제평론가로서 자신 있게 금융 예측을 내놓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일찌감치 예측했으니 이번에도 그 정확성만 두고 평가해 달라는 주문이다. 거칠지만 흘려듣기엔 찜찜한 책이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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