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 6·25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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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 가던 전쟁, 6·25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1세대 참전 용사들과 현재 대한민국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2세대 장교, 그리고 젊은 나이에 국방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3세대 장병이 만나 전쟁의 경험과 교훈을 함께 나눴다. 9일 경기도 파주시 육군 제1보병사단(사단장 신현돈 소장)에서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장에서다.

육군 보병 1사단은 이날 본지에 회고록 ‘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을 연재 중인 백선엽(90) 예비역 대장을 초청해 그의 전승과 공적을 기념하는 비석 제막식을 열었다. 전쟁 지휘관 개인의 이름을 단 기념비가 세워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주 거주 참전 노병 50여 명과 신현돈 1사단장 및 장병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 사단장은 “6·25 때 1사단을 이끌고 임진강 방어전, 다부동 전투, 평양 첫 입성의 대승을 이룬 백선엽 장군에 대한 본격적인 기념행사를 열지 못했다는 점이 늘 유감이었다”며 “이 사연을 들은 후원단체와 사단 장병이 뜻을 모아 기념비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파주시 6·25 참전 전우회’ 김종원(81) 회장은 “백 장군의 지휘 아래 나는 전투에 뛰어들어 이 나라를 지키는 데 공헌했다”며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서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승재(23) 상병은 “백선엽 장군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6·25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앞으로 6·25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나라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곰곰 새겨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성(25) 병장은 “신문에서나 접하던 한국전쟁의 영웅을 직접 만나서 정말 감격했다”며 “백 장군과 그 부하들의 헌신과 용기를 배우고 그 뜻을 받들어 남은 복무기간 동안 나라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백선엽 예비역 대장(가운데)과 육군 제1보병사단 신현돈 사단장(오른쪽)이 9일 파주시 1사단 영내에서 백선엽 장군 전승·공적 기념비 제막식을 마친 뒤 젊은 사병들과 함께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백 장군을 처음 본 젊은 병사들의 첫 반응은 “정말 건강해 보이신다”였다. 그들의 첫 질문은 “건강 유지 비결이 무엇이냐”였다. 백 장군은 “나는 전쟁 중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 손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젊은 장병과 함께 생활하면서 몸과 마음을 늘 젊게 유지했다”고 화답했다.

1사단은 사단 장교식당 앞 부지에 백선엽 장군을 기념하는 ‘전진(前進) 광장’을 조성하고, 백 장군 공적 기념비를 중심으로 다부동 전투, 평양 선봉 입성, 제3 땅굴 발견 등 사단 전적 기념석 10개를 세웠다.

글=유광종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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