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성권한 척도' 세계 63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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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미국의 1만5천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뉴욕 루트거스광장에서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얻기 위해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한 날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인 것이 여성이다. 제5공화국 이후 정부의 여성에 대한 정책적 배려에 힘입어 사회의 '금녀(禁女)의 벽' 이 차례로 깨졌다.

경찰대학.사관학교 등 특수대학들이 문호를 개방했으며 여성선원 탄생 이후 성(性)이 취업의 굴레가 되는 범위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전업주부들은 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고 있다.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여성부가 발족해 가정폭력과 직장의 성희롱, 미성년 매매춘 등 사회관습을 시정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흡하다. '2000여성백서' 에 따르면 남녀평등지수는 세계 30위이며 여성의 권한척도는 이보다 훨씬 뒤처져 63위에 머물러 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남자(74.4%)에 훨씬 못 미치며(47.4%), 여성은 고작 남성의 3분의 2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각 가정에서는 아들이건 딸이건 가리지 않고 교육에 전념하고 있지만 '더 배운 딸일수록 취업하기 힘든' 사회적 모순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취업여성들의 이직을 부채질하고 있다.

동성동본 금혼제, 친생부인소(親生否認訴)의 제소기간 등 현실적으로 여성에게 고통을 주는 법조항들이 여성계의 끈질긴 투쟁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으나 국회의원들의 무성의로 아직도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여성취업의 장벽을 제거하고, 민법의 독소조항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 뉴욕에서는 제45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 정부 대표들은 각국의 다양한 여성정책과 성공사례들을 충실히 검토해 한국 사회가 하루빨리 평등한 사회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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