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경제팀의 불협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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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진념(陳稔)경제부총리는 엊그제 금융기관장 연찬회에서 "은행은 수익성 있는 대출처를 찾기보다 현재의 경영에 안주하고 제몫 찾기에만 신경쓰는 등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비판했다.

자금시장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부로선 금융기관들이 산업은행 회사채 신속 인수, 현대전자 수출환어음 매입 확대 등 일련의 시장안정책에 적극 협조하지 않으니 힘도 빠지고 시간도 더 걸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陳부총리의 발언 배경을 이해못할 바는 없지만, 그러나 陳부총리는 금융기관은 결코 공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공기가 아닌데도 공기라고 인식하는 데서 정책은 숱한 부작용을 낳고, 부총리는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陳부총리와 달리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 총재는 은행을 '돈 장사하는 기업' 으로 보고 "떼일 곳에는 빌려 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고 말하고 있다. 관점이 다르면 분석과 대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은 "생존 가능성이 가변적인 기업도 모두 포기해선 안된다" 며 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쪽 말이 옳은가.

고위 공직자간 혼선은 이뿐만이 아니다. 全총재는 대출 금리 인하를 시사하지만, 李위원장은 금융기관의 예대마진은 더 커야 한다며 대출 금리 유지를 암시한다. 이기호(李起浩)청와대 경제수석은 금명간 추가적인 은행 합병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李위원장은 시기상조라며 덮어버렸다. 경제수석의 섣부른 언급도 문제지만, 이렇게 고위 책임자간에 말이 엇갈리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물론 이들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 한마디는 국민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부에 표출할 때는 가급적 통일된 견해여야 한다. 이 때문에 경제부총리와 경제정책조정회의를 둔 것이 아닌가.

정부의 메시지가 서로 다르면 도덕적 해이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고 질책하기에 앞서 헷갈린 신호를 줌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 정부부터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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