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금사경 전시회 여는 원응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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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수행이란 건 조용히 남 모르게 하는 것인데,이렇게 세상에 내놓으려니 영 부끄럽고 미안하네….”

검은 얼굴에 아래로 쳐진 눈두덩이,느릿한 말투의 원응(元應 ·67 ·벽송사 조실)스님은 영락 없는 시골 노인이다.그러나 그가 ‘부끄럽다’며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불교 경전 중 가장 심오하고 방대하다는 ‘화엄경(華嚴經)’ 60만자를 금가루로 옮겨쓴 금사경(金寫經).

고려시대 이후 끊어진 전통 불사를 혼자 힘으로 10년만에 마친 것이다.그리고 그 작품을 5년간 간직하고 있다가 주위의 권유에 공개키로 결심,27일부터 3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불경을 손으로 옮겨 쓰는 사경(寫經)은 전통적인 불교 수행법의 하나.고려시대엔 국가차원으로도 많이 이뤄졌지만 조선시대 이후 전통이 끊겼으며,아쉽게도 고려시대 금사경은 국내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팔만대장경 같은 목판본과 은(銀)으로 쓴 화엄경 은사본(국보 2백15호·호암미술관 소장)만 일부 남아 있다.

금사경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일본 코토박물관에 있는 ‘법화경’·‘대보적경’ 일부 뿐으로 알려졌다.최근 국내에서 ‘반야심경’(2백60자) 같이 짧은 경전을 금사경하는 경우는 있으나 ‘화엄경’ 금사경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사경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변치않는 금으로 새긴다는 뜻이고,불경 중에서도 가장 방대한 화엄경을 택한 것은 예로부터 큰 뜻을 세울 때는 화엄경을 사경했기 때문이지요.”

원응 스님이 세운 ‘큰 뜻’이란 지난 1961년 지리산 칠선계곡 인근 벽송사에 자리잡으면서 마주친 원혼(寃魂)들에 대한 해원(解寃)이다.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쓰였다던 벽송사를 찾았을 당시 곳곳엔 유골들이 나뒹굴었고,이를 수습하던 스님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마음으로 치료해야한다”는 원력(願力)을 세웠다고 한다.

뜻을 세우고 20여년을 참선하며 기다려온 스님은 지난 1985년 먼저 ‘화엄경’을 먹물로 옮겨쓰는 먹사경부터 시작했다.

여러가지 ‘화엄경’을 비교하며 오 ·탈자를 잡는등 금사경에 한 획의 오차도 없게 사전작업을 했다.5년 뒤 여러 신도들의 시주를 모아 금사경에 들어가 95년에 마쳤다.병풍형 책자 80권을 모두 펼치면 1천3백m나 된다.

“참말로 후회가 많았지.벼르고 벼르다가 시작은 했는데,눈은 침침해지고 어깨는 빠지는 것 같고….주사 맞고 찜질해가며 쓰다가 또 쓰러지면 며칠씩 굶고 누웠다가 일어나 다시 쓰고,그저 죽을 각오로 하다보니 해내긴 했어요.”

원응 스님은 “이제 글씨체가 좀 잡히는 듯한데 힘이 없어 더 못해”라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불교에선 경전을 ‘본다’고 한다.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는 것(간경·看經)만으로도 공덕이 쌓인다는 의미다.

스님이 전시를 결심한 것도 “화엄경 금사경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인연을 만들자”는 불심의 발로다.판매는 일체 하지 않는다.

전시회에는 금사경을 위해 쓴 먹사경 외에 ‘반야심경’ 금사경,‘금강경’ 10폭 병풍 금사경 등 1백80여점이 선보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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