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원장 방미' 국민은 궁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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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이 '비공개리에'6박7일간의 미국 잠행을 마치고 지난 17일 귀국했다. 林원장은 어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방미 결과를 보고했고, 22일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상임위원회에 참석해 방미 결과를 비공개로 설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林원장의 방미는 여러가지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그의 행적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 있다.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이 미국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날 林원장은 워싱턴에 도착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국장 등과 만났다는 정도만 확인됐을 뿐 그가 누굴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정부 내 역할에 비춰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한 사전 의견 조율을 하지 않았나 하는 막연한 추측만 해볼 뿐이다.

한.미 외무장관 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미 외교 책임자와 만나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할 만큼 긴박하고 중대한 사안이 있었던 것인지, 한.미간에 무슨 심각한 이견이 있어서 시급히 조율한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 협의는 잘 된 것인지, 앞으로 미국과의 대북 정책 공조(共助)는 원만하게 이뤄진다고 믿어도 좋은 것인지, 궁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林원장은 특히 햇볕정책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대표적인 대북 포용론자이므로 그가 미국 신 행정부와 어느 정도 호흡을 맞출 수 있었는지는 우리 대북 정책의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장이란 직책의 특수성이나 사안의 성격에 따라 어느 단계까지는 비밀 유지가 필요한 일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한.미 고위 협의의 큰 방향 정도는 국민도 알아야 한다. 의문은 의혹을 낳고, 의혹은 불신을 부른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측이 차세대 전투기 구매 압력을 넣었다는 보도와 함께 부시 행정부가 대북 공조 대가로 미 전투기 구매를 요구한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를 억측이라고만 몰아붙이기에는 정부가 하는 일이 의문투성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납득할 만한 수준의 투명성이다.

대북 정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미국의 협조가 긴요하다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다.

지난해 너무 성급하게 추진한 대북 정책이 속도 조절을 요구받은 것도 바로 국민적 합의 없이 앞서 나간 때문이 아니던가.

국민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정부가 어디로 가고 있고,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林원장은 국민이 궁금해 하는 점을 최소한 대의 기구인 국회에 나가 알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비공개로 각 당 대표에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설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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