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대학 입시에서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不) 정책’ 재검토 방침을 시사했다. “이제는 대학에 자율을 줘야 한다”며 3불 정책에 대해 잘 연구해 보겠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이제는 대학이 어떤 학생을 어떤 방법으로 뽑아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늦었지만 입시 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란 점에서 환영한다. 정 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에도 3불 폐지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번은 총리 신분에서 나온 발언이라 정책 추진에 보다 무게가 실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2년 전 출범하면서 대학 자율화를 공언했다. 출범 첫해를 ‘입시 자율화 원년’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학들이 느끼는 자율 체감도는 별반 나아진 게 없는 실정이다. 대입 일반 업무를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넘기고, 학생부·수능 반영비율을 대학 자율에 맡겼다고는 하나 정부가 입시를 손에 쥐고 통제하는 행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처럼 3불 폐지에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보니 대입 자율성이 원천 봉쇄되고 있다는 게 대학의 주장이다.
대학이 입시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정 총리의 말처럼 대학 스스로 정한 방법으로 대학 특성과 교육 목표에 맞는 우수 학생을 뽑아 가르칠 때 교육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입김으로 대입 제도가 수시로 바뀌어 학생·학부모가 고통받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입시 자율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정부도 역대 정권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고수해 온 3불 정책을 답습하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따라서 정 총리의 발언은 3불 정책을 손질해 대입 자율화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읽혀져 바람직하다. 그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소극적 입장을 보였던 기여입학제와 관련, 사립대에 대해서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진일보한 입장 변화다. 열악한 사립대 재정의 보완 측면에서도 정 총리의 발언은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정부의 3불 정책 폐지에는 대학의 책임 있는 자세가 수반돼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방법으로 대학 입시의 신뢰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고교 정상화에 기여하고 사교육을 줄이는 방향의 입시제도여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기여입학제의 경우 시비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최소 학력기준 충족과 정원 외 선발 등 기여입학 요건을 엄격히 하고, 교내·외 인사로 구성된 관리위원회에서 투명하게 운영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대선 때 ‘3단계 대입 자율화 방안’을 공약했다. 그 마지막 3단계가 3불 정책 폐지를 담은 대입 완전 자율화다. 정부는 정 총리 발언을 계기로 구체적인 3불 폐지 계획을 수립해 주기 바란다. 그게 공약을 지키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