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제는 대학에 자율을 줘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학 입시에서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不) 정책’ 재검토 방침을 시사했다. “이제는 대학에 자율을 줘야 한다”며 3불 정책에 대해 잘 연구해 보겠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이제는 대학이 어떤 학생을 어떤 방법으로 뽑아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늦었지만 입시 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란 점에서 환영한다. 정 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에도 3불 폐지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번은 총리 신분에서 나온 발언이라 정책 추진에 보다 무게가 실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2년 전 출범하면서 대학 자율화를 공언했다. 출범 첫해를 ‘입시 자율화 원년’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학들이 느끼는 자율 체감도는 별반 나아진 게 없는 실정이다. 대입 일반 업무를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넘기고, 학생부·수능 반영비율을 대학 자율에 맡겼다고는 하나 정부가 입시를 손에 쥐고 통제하는 행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처럼 3불 폐지에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보니 대입 자율성이 원천 봉쇄되고 있다는 게 대학의 주장이다.

대학이 입시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정 총리의 말처럼 대학 스스로 정한 방법으로 대학 특성과 교육 목표에 맞는 우수 학생을 뽑아 가르칠 때 교육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입김으로 대입 제도가 수시로 바뀌어 학생·학부모가 고통받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입시 자율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정부도 역대 정권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고수해 온 3불 정책을 답습하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따라서 정 총리의 발언은 3불 정책을 손질해 대입 자율화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읽혀져 바람직하다. 그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소극적 입장을 보였던 기여입학제와 관련, 사립대에 대해서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진일보한 입장 변화다. 열악한 사립대 재정의 보완 측면에서도 정 총리의 발언은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정부의 3불 정책 폐지에는 대학의 책임 있는 자세가 수반돼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방법으로 대학 입시의 신뢰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고교 정상화에 기여하고 사교육을 줄이는 방향의 입시제도여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기여입학제의 경우 시비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최소 학력기준 충족과 정원 외 선발 등 기여입학 요건을 엄격히 하고, 교내·외 인사로 구성된 관리위원회에서 투명하게 운영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대선 때 ‘3단계 대입 자율화 방안’을 공약했다. 그 마지막 3단계가 3불 정책 폐지를 담은 대입 완전 자율화다. 정부는 정 총리 발언을 계기로 구체적인 3불 폐지 계획을 수립해 주기 바란다. 그게 공약을 지키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