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았다 거기, 꿈이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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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을 해본 사람들은 너나 없이 말한다. “하늘에 있는 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어릴 때 꿈을 접지 못한 이부터 우연히 비행을 접한 후 인생의 항로를 다시 정한 이까지 이곳 사람들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비행’에 들뜬다.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와 함께 이들의 꿈도 새롭게 펼쳐진다.


20일 오후 김포공항 내에 위치한 한 조종사교육원(강서구 공항동)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반여행이 아닌 ‘조종’을 위해 비행기에 오르려는 이들이다. “의사부터 교수, 자영업자까지 다양한 직업과 연령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한국조종사교육원 장익세(31) 교관의 말이다.이어 “이들은 비행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처럼 좋아하고 열정을 보인다”고 전했다.

대부분 레저나 취미생활을 위해서지만 좀 더 진지한 목적으로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조종사 교육을 받고 있는 전소영(사진왼쪽·36)씨가 그 예다. “7년간 파티플래너로 일하면서 처음 세웠던 목표를 다 이뤘어요. 제 인생의 후반부에는 전혀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죠.” 전씨가 다음 목표로 삼은 직업은 비행기 조종사다. “만약 내 인생이 몇 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할지 생각해봤어요. 꼭 한번 하늘을 나는 큰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더군요.”

사실 직업조종사가 갖춰야할 조건은 만만치 않다. 따야 하는 면허 종류만 최소한 4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자가용조종사 면장’이 있다. 레저비행에 필요한 기본 면허로 취득까지 3~6개월 걸린다. 그 다음은 기상(氣象)에 구애받지 않고 항공기에 장착된 계기만을 이용해 비행할 수 있는 ‘계기비행 한정증명’, 그리고 적어도 비행 200시간을 쌓아야만 응시할 수 있는 ‘사업용조종사 면장’, 마지막으로 2개 이상의 엔진(대부분 항공사 비행기의 엔진이 2개 이상이다)을 가진 비행기 조종을 위한 ‘다발항공기 한정증명’이다. 항공기 사용사업에 취업할 수 있는 면허증인 사업용 조종사 면장 취득엔 1년 정도가 소요된다.

제법 까다로운 항공신체검사도 통과해야 한다. 열의가 넘치더라도 신체검사에서 좌절할 수 있다. 자가용조종사 면장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단독 비행을 할 때엔 항공무선통신사 자격증을 소지해야 한다. 하나의 무선국으로 등록돼 있는 항공기 특성상 꼭 필요한 면허증이다.

나이·성별·신체조건 등 현실적인 상황 대부분이 불리해보였지만 전씨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첫 비행에서 “딱 내 스타일”이라고 느꼈다는 전씨는 “자동차와 건물이 장난감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이 세상 모든 시름이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복잡하고 미어터지는 지상과 달리 하늘 위에서는 마음도,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 진다”며 만족해 했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홍근(56)씨는 어린시절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에게 공군사관학교 문턱은 너무 높았다. 미국에 잠시 체류하던 시절, 홍씨는 아들이 그 꿈을 대신 이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종사 교육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아들에게 권하기에 앞서 교육을 받던 홍씨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자 조금씩 욕심을 냈다. “자가용조종사 면장을 따고 나니 그 다음 단계인 계기비행이 궁금해지더군요.” 결국 한걸음씩 천천히 내딛으며 계기비행부터 다발항공기 한정증명까지 필요한 최소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나이 때문에 항공사에 응시할 수 없는 홍씨는 귀국 후 조종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관을 목표로 삼았다. “항공기 조종사를 시키고 싶은 막내아들이 곧 제대해요. 교관 자격증을 따서 아들을 직접 가르쳐 보고 싶었어요.” “어쩌면 아들은 핑계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속내를 내비친 홍씨는 지난 4일 교관조종사가 되기 위한 조종교육증명과정을 취득했다.

홍씨는 비행을 인생에 빗댔다. “첫 비행이라면 흔히 흥분과 쾌감을 떠오르는데 실제론 상당히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그간에 쌓은 실력과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과정을 모두 극복해야 즐길 수 있는 게 비행이더군요. 좀 더 젊어서 배운다면 인생을 넓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전씨는 항공기 조종사만큼 ‘전문적’인 직업이 없다고 강조한다. “지식이 없는 상태에선 시동도 켤 수 없고 창문도 열지 못하니까요.” 항공대학교에서 4년 배울 내용을 1년 안에 끝낼 계획이라는 전씨는 언젠가 큰 항공사의 파일럿이 돼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사진설명]“하늘을 날아오르며 삶과 목표도 새로워졌어요.” 파티플래너에서 항공기 조종사로 인생 항로를 바꾼 전소영씨(사진 가운데)와 어린 시절 꿈을 이뤄낸 홍근씨(사진 오른쪽).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일반인 비행 체험하려면…

한국조종사교육원을 통하면 일반인들도 체험 비행을 할 수 있다. 교관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1회 1시간~1시간30분 정도 비행한다. 1회 비용은 회원 주중 20만원, 주말·공휴일 22만원이고 비회원은 주중 25만원, 주말·공휴일 30만원이다. 대개 비행 20~30시간까지는 교관이 동승하고 이후 교관의 인증을 받으면 혼자서도 비행할 수 있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지하1층.

▶문의=02-2667-0015 www.pilotscho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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