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본질' 로 돌아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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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12월 초와 새해 1월 초의 불과 한달 사이에 우리는 눈이 핑핑 돌 정도의 급속한 '초점이동'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한달 전의 국민적 관심사, 정치의 초점은 분명 국가위기였다. 경제위기.리더십위기.총체적 위기라는 말이 온나라를 뒤덮었다.

그래서 그 위기극복' 처방으로 나온 것이 국정쇄신이었다.

국정쇄신'을 위한 정부.여당 개편과 인치(人治) 아닌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 등 국정쇄신론이 쏟아져 나왔다.

*** 급속한 '초점이동' 현상

그러나 위기와 쇄신이란 초점은 얼마 안가 엉뚱하게 권노갑(權魯甲) 거취문제로 옆으로 밀리더니 민주당 당직개편을 거쳐 급기야 의원임대 파동과 안기부자금 파동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이 두가지 문제가 여야정쟁의 초점이 되고 정부.여당의 최대 관심사도 위기와 쇄신이 아니라 DJP 공조복원과 안기부자금 문제를 빌미로 한 대야(對野) 총공세인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DJ 자신 정당간의 문제인 의원임대를 국무회의에서까지 옹호하는가 하면 '영수회담 결렬 후엔 야당 압박에 직접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1백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거액이 녹아 없어진 책임은 누가 지는지, 추가로 40조원을 처넣는다고 문제가 개운하게 해결될는지 등에 관한 논의는 매듭도 못본 채 쑥 들어갔다.

연말에 끝낸다던 기업.금융개혁이 정말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는지도 명백한 기약이 없는 가운데 그렇게 외쳐대던 구조조정 대신 슬그머니 경기부양책이 연일 발표되는 새로운 현상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초점이 무엇인지 보통사람으로서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야 정신을 차리든 말든 이런 국면전환을 통해 재미와 득을 보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것이 정치의 묘미(妙味)인지도 모른다. 우선 DJ 입장이 확실히 강화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위기와 쇄신이 초점이던 상황에선 연일 국민에게 사과하고 여당 내에서조차 불손한(?) 반발기미에 부닥친 DJ이지만 이제는 위기의 큰 원인을 야당의 발목잡기로 몰면서 '강력한 정부' 를 주창하고 "인기에 연연 않겠다" 고 단호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여권 내부는 다시 DJ 눈치를 민감하게 살피는지 더러 고개를 들곤 하던 여권내 일부 인사도 다시 침묵만 지킬 뿐이다. 대외긴장으로 내부단합을 도모하는 고전적 방식이 연상된다. JP도 이 상황의 수혜자일 수 있다.

선거 때 DJ 비판을 그렇게 해놓고는 그동안 어정쩡하게 있다가 이번에 확실한 공조회복을 했으니 부귀와 권력이 다시 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누가 득을 보고 못보고가 아니라 이렇게 해서 나라가 잘 되고 위기가 극복되겠는가 하는 점이다.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되면 정말 정국이 안정되고 위기가 극복될 것인가.

DJP공조가 잘 되던 그 때도 정치는 늘 '개판' 이었고 그 때 잘 했던들 새로 위기가 오지도 않았을텐데 이제와 공조회복이 된다고 국정이 더 잘 될 수 있을까. 안기부자금 흑막의 진상규명은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다.

그러나 여당의 야당압박 총공세가 성공을 거두고 마침내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찍소리도 못하게 된다면 위기는 극복되고 국정은 잘 굴러갈 것인가.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되고 야당이 항복을 하면 녹아버린 1백조원의 공적자금이 되살아나고 금융개혁.공공개혁이 술술 잘도 풀릴 것인가.

금융노조와 경찰관 등 수만명이 혹한 속에서 떨며 그 고생을 했던 것이 과연 야당과 교섭단체문제 때문이었나. 한빛은행관악지점.정현준.진승현게이트의 수천억원 불법대출과 오리무중의 거액자금이 야당이나 교섭단체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 위기 극복에 '主力' 쏟아야

이처럼 따져보면 야당의 발목잡기나 자민련 교섭단체 문제는 작은 문제요, 곁가지일 뿐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아무리 표면상 초점이 급속히 바뀌어도 경제위기.리더십위기.총체적 위기라는 문제의 본질엔 변함이 없고 다른 초점의 부각으로 본질문제가 희석되거나 잊혀질 수도 없다.

위기가 그대로 있는 한 진정한 초점은 위기요, 위기극복을 위한 국정쇄신인 것도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안기부 흑막자금 규명이나 DJP공조회복은 그것대로 하더라도 주력(主力).주관심은 다시 문제의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

구조조정.개혁.국정쇄신.리더십의 변화.정책실패 문책… 등 위기극복을 초점으로 한 정치수순(手順)과 집중적인 논의가 빨리 재개돼야 한다.

본질문제에 대한 정면도전없이 꼼수.권력.호재발굴… 따위로는 소규모 전투의 반짝 승리는 몰라도 전쟁에는 지는 길로 가기 쉽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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