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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뿌리 자치’ 우려되는 6·2 지방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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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향의 민심은 세상살이의 창(窓)이었다. 소박했다. 화제는 6·2 지방동시선거로 옮아갔다. 살림을 피게 만들고, 애들 교육에 도움이 될 단체장과 교육감을 뽑아야 한다는데 헷갈린다는 말이 많았다. 요지는 이랬다. “출전 선수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준비운동 한다며 몸을 굽실거린다. 한두 번 속은 것도 아닌데 또 찜찜하다. 종목이 8개라는데 명칭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에 여덟 번 찍으라는 것은 고문이다. 로또 당선자가 속출할 것이다. 왜 이런 바보 투표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뽑아야 할 8명이 대체 누구냐”며 답답해했다. 겨우 생각이 났다. ①광역단체장(특별시장, 시·도지사) ②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 ③광역의원(광역시·도의원) ④기초의원(시·군·구의원) ⑤광역비례대표의원 ⑥기초비례대표의원 ⑦교육감 ⑧교육의원.

코미디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5×8=40명이다. 공약은커녕 이름조차 기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는 더 문제였다. 후보들은 기호도 없다(정당공천제가 아님). 투표용지에 실을 이름 순서는 후보들이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네모 용지에 기호 없이 홍○○, 김○○ 식으로 이름만 나열한다. 그래도 맨 먼저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절대 유리하다. 기호(당)보고 찍기 일쑤인 지방의원에 이어 교육감·교육의원도 로또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5회 전국 동시지방선거는 103일 남았다. 주민의 삶과 자녀 교육을 책임질 사람을 뽑는 일이다. 총선보다도 중요하다. 현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도 있다. 출마자·선출자·선거비가 역대 최대인 3관왕이 유력하다. 선거를 잘 치르려면 언론은 물론 정부·정치권·자치단체의 책임이 막중하다. 바보 선거제도를 손질할 타임은 놓쳤다.

정부와 정치권이 풀뿌리 지방자치를 ‘헛뿌리’로 만드는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유권자가 선거일 며칠 전에 무더기로 배달되는 홍보물만으로 수십 명 후보자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후보자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정보를 충실히 제공하고, 후보자 검증과 불법 선거운동 감시를 더 강화해야 한다. 학생 교육을 통해 지방자치에 대한 어른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8명을 한꺼번에 뽑는 선거제도는 다음에 꼭 개선해야 한다.

양영유 정책사회데스크